삼보일배, 이 땅의 성자들
개혁국민정당 국회의원 김원웅 홈페이지 퍼옴.
궁극은 서로 통하는가 봅니다. 신부와 스님과 목사님이 나란히 삼보일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묘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음 속에 빛이 드는 느낌입니다.
산이 죽으면 강이 죽고 강이 죽으면 바다가 죽는다고, 물이 죽으면 생명이 있는 것이 죽고,
생명이 있는 것이 죽는 중에 사람도 아우성치며 죽어간다는 도도한 진실을 일깨우는 삼보일배의 엄숙한 의식이 문득, 나를,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05km를, 절을 하며 올라온 성자들, 그들이 분명히 보여줍니다. 개펄이 죽으니 바다생명이 죽고 바다생명이
죽으니 바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도처의 죽음의 굿판이 보이지 않느냐고 온 몸으로 보여주는 그들은 바로 오늘날의 희생양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그리스도는 무죄한 인간이었습니다. 무고한 그가 왜 죽음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을까요? 이사야가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이제야 이사야 선지자의 그 애통하는 뜻을 알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허물을, 우리의 죄악을 성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삼보일배 55일만에 수경스님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뭔가 쏴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수경스님을, 그리고 문규현 신부님을 압니다. 순수하고도 맑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들을 본 것은 천안에서였습니다. 그 이후에 그 성자들은 묵언을 하고 과천까지 온 모양입니다. 그
묵언의 의미를 쓴 칼럼을 읽으면서 또 한번 뒤통수를 맞았으니까요.
“그들은 이제 묵언 중이다. 묵언 중인데 답답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강렬하다. 목숨을 건 참회의 기도 수행 중에 입까지 닫아버리다니, 묵언의 의미는 뭘까...
말하지 않겠다는 건 듣지도 않겠다는
거였다. 정이 듬뿍 들어 이제는 그들 자신이 되어버린 새만금의 운명을 놓고, 여전히 방조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느니, 미군측에서 150만평을
요구했다느니, 하는 소문을 듣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런 어지러운 소문을 들어 슬픔을 갖고 분노를 품어 기도하는 마음을 더럽히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새만금 개발을 강행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의 마음도 내려놓고, 새만금에 대한 연민도 내려놓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자만심도 내려놓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참회하겠다는 거였다.”
낮에는 절하고 밤에는 노숙하는 성자들,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어
오히려 힘이 있는 성자들입니다. 새만금에서 군산, 보령, 천안, 평택, 수원을 거쳐 과천, 서울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이 땅의 그리스도 한분이
탈진을 하고 쓰러진 것입니다. 그의 고통 속에서 우리의 허물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짜 장님인 것이 아닐까요? 나부터 돌아보겠습니다.
경제논리로 생명들의 삶터를 마구 빼앗아대지는 않았는지. 지금 당장 돈이 되고 편하기만 하면 미래는 없어도 좋다는 식으로 근시안적으로 살지는
않았는지, 세상이 전쟁과 반목으로 험악해져도 우리만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라는 식으로 이기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숲이 다
파헤쳐지고, 강이 다 오염되고 개펄이 다 죽어 바다가 죽고 나서 인간이 돈만 먹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우리는
숲과 함께, 강과 함께, 개펄과 함께,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스룹바벨선교회>
우리는 지금 '쑥물'이라는 단어를 실감할 수 있는 제대로된 글을 한편 읽어보았습니다. 이 글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시고, 우리가 빼앗긴 영생을 찾아주시려 십자가를 지고 가신 메시야 예수! 이제 그분은 이 땅까지 (현 세상의 주인인 마귀로부터) 우리에게 찾아주시려고 다시 오실 준비를 하고 계신 시점에서, 유일하신 창조자요, 유일하신 심판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신랑으로 알지 못하고, 이방 잡신의 종교지도자와 '환경, 인권, 전쟁방지' 등의 명목으로 손을 잡고 기도하며 뜻을 같이하고 함께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변질된 포도나무의 행위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이 믿는 가짜 신을 벗어던지고 유일하신 참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려는 목적이라면 그들은 서로 만날 수도 있고, 사업을 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그러나 오늘 김원웅 의원이 '성자'라고 칭한 3명의 종교지도자들을 살펴봅시다. 결코 성자가 아닙니다. 하나는 부처를 섬기는 자로서, 크나큰 우상숭배를 하는 자요, 나머지 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헛일을 하고 있는 소경된 자들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자요, 세상 모든 이는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김원웅 의원은 너무 쉽게 '우상숭배자', 또는 '이방 종교에게까지 하나되자 하는 에큐메니칼 사상 가진 자들'에게 '성자'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세상 모든 이는 예수 피를 바라보고 자기 죄를 바라볼 때, 누구나가 거듭난 죄인, 의로운 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상을 가졌다 하여도 3보1배와 같은 육신을 괴롭히는 모양의 일로써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수경 스님은 그렇다 쳐도, 문규현 신부와, 이희운 목사는 이러한 행사에 동참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환경 운동을 비롯하여 그 어떤 일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셔놓고 그분의 명령에 의해 해야 합니다.
주님은 가증한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위 기사와 더불에 아래에 링크된 기사는 현대인들에게 환영받고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본질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선한 일처럼 보이나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참 생명 가진 자를 죽이고, 또한 참된 생명으로 들어가려는 자들의 길까지 원천 봉쇄해버리는 사탄의 무서운 전략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화합, 통합, 화해, 일치"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모든 친교입니다. 이 화합의 움직임에는 "다 좋으니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그 한마디만 하지 말아달라"는 사단의 애걸과 속임수가 도시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환경운동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환경은 몇몇이 지킨다고 보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3보1배를 한다고 보존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땅은 3차대전으로 인하여 황폐해지며, '후 3년 반' 끝에 오시는 예수님과 144,000과 이 땅의 짐승정권과의 '아마겟돈'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됩니다.
그리고 나서야, 김원웅 의원이 그리도 바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계는 이사야 35장과 65장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세계를 성경에서는 '새 시대', '천년왕국', '고토' 라고 부릅니다. 이 세계를 거쳐서 우리는 소위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점점더 혼란만 가중되는 시대입니다. 절대가치는 사라지고 상대가치가 인기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가치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혼란의 시국에 하나님은 당신의 양떼들을 구해내시려고, 다림줄을 손에 들고 계십니다(암 7:6~9). 주님은 '뒤집어 엎는 심판기'가 될 때 이 다림줄을 '스룹바벨'의 손에 위탁하신다 예언하셨습니다(슥 4:10).
본 선교회는 바로 '혼란의 줄'을 끊어 버리고(사 34:11), 진리의 '다림줄'을 선파하는 애굽 세상에 세워진 외로운 제단입니다(사 19:19~20). 슬프고 압박받는 제단이지만, 오늘도 쉬지 않고 계시록과 예언의 말씀을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홈페이지에 올려진 모든 내용들을 잘 정독하실 때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소성되고 앞으로 될 일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사기가 판치는 때에는 성경만이 우리를 진리의 사상으로 한걸음씩 인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스승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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