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예레미야 52장
제 목 : 예루살렘 함락과 백성의 포송
1. 시드기야의 반역과 운명 : 1~11
『 1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2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 내시기까지에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매 』
시드기야 왕이 예언을 불신하고 애굽의 도움(겔 17장)을 기대한 것은 국민에게까지 진노가 임하게 할 행위였다. 왕의 악정이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까지 쫓아내게 된 것이다. 이로써 유다는 세 번째로 북방에 잡혀가게 되었다(BC 587). 하나님의 뜻은 유다를 바벨론에 붙여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하도록 함인데, 이에 순종치 않고 바벨론을 배반한다는 것은 바벨론을 몽둥이로 드신 하나님께 정면 도전함이다(렘 21:9, 38:2).
『
4 시드기야 구년 시월 십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을 대하여 진을 치고 사면으로 흉벽을 쌓으매 5 성이
시드기야 왕 십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6 그 사월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식물이 진(盡)하였더라 7 갈대아인이 그 성읍을 에워쌌더니 성벽을 깨뜨리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아라바 길로 가더니
8 갈대아인의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미치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9 그들이 왕을 잡아가지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를 신문(訊問)하니라 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목전에서
죽이고 또 립나에서 유다의 모든 방백을 죽이며 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
위 말씀의 내용들은 일찍이 예레미야서에
예언된 바 있는 내용이다.
① 성이 에워싸임(5절) - 렘 21:4,9 참조.
②
기근이 심함(6절) - 렘 11:22 참조.
③ 시드기야 왕이 원수에게 사로잡힘(8~11)
- 렘 21:7, 렘 39:1~10 참조.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정권이 무너지고 왕자와 방백들,
부자들이 멸망하고, 또 성전의 보물들을 원수에게
빼앗긴 것은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한 죄악의 대가이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다시 예언하라(계
10:7~11)는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세계의 모든 피로 산 교회가
동일한 심판을 받게 될 줄 알아야 한다(사 46:10. 히 10:1, 롬 15:4, 고전 10:1~11).
2. 예루살렘에 대한 적군의 횡포 : 12~23
『 12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 년 오월 십일에 바벨론 왕의 어전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
여호와께서 영광으로 가득 채우셨던 이 성전이 어찌 이렇게 될 수 있단 말인가? 왕상 8: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택함받고 축복받는 것보다 그 이후의 순종이 더 귀하다는 중요한 교훈이다. 왕상 9:39절을 보라. 즐겨 순종하면 복이요,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운다는 진리는 시대를 관통하여 존재하는 불변의 보편 진리이다(사 1:19~20). 그럼에도 오늘날의 종교 지도자들은 구원 받은 교회에는 결코 심판이 있을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그들을 바로 깨우쳐 칼에 쓰러지지 않게 할 의무는 우리에게 있지 않겠는가! (겔 3장, 33장 참조).
『 14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15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빈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옮겨가고 16 비천한 국민을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 바벨론은 이 일을 제 뜻대로 한 것 같겠지만(사 10:12~19) 실상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대로 시행한 것뿐이다. ☞ (홈페이지>>주제별말씀정리>>자유의지와 결정론을 참조하라).
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사른 것(13절),
② 성벽을 헐어 버린 것(14절),
③ 백성을 사로잡아 옮겨 간 것(15절) 등의 일들은 선지자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렘 32:29, 렘 1:15, 렘 20:4절을 참조하라.
위의 사건들이 이루어지기 전에 예레미야는 미리 올 일들을 예견하였던 것이었다. 특히 렘 15:2절은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종합적 예언이다.
렘 15: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될 자는 포로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
17 갈대아인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의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
(좌) 성전 낭실 앞에 세워진 보아스와 야긴(왕상 7:15~22) / (우) 제사장들의 성결의식을 위한 놋바다(왕상 7:23~37) |
두 놋기둥은 성전 건물을 받치는 지주(支柱)가 아니고 다만 장식품으로서 신약의 영적 의의(靈的意義)를 위하여 제조된 것이다(왕상 7:15~22). 두 기둥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인데, ① 야긴은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다'는 뜻이요, ② 보아스는 '하나님께 힘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이 두 기둥을 원수가 가져가도록 허락하신 데에는 이제부터 70년이 차기까지 이 성전을 무너뜨린 채로 버려두리라는 속뜻이 담겨 있다.
『
18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19 시위대 장관이 또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는데 』
이 부분(가마, 부삽, 불집게, 주발, 숟가락, 놋그릇, 잔, 화로, 솥, 촛대, 바리)에 대하여는 왕상 7:40,45절을 참조하라.
『
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 있는
열두 놋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더라 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고가 십팔 규빗이요 그 주위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사지(四指)놓이며 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고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으며
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륙이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일백이었더라 』
"사지(四指) 놓임"이란 네 손가락만큼의 두께(약 8cm)라는 뜻이고 "석류"란 것은 석류 모양으로 만들어진 장식품을 말한다.
3. 적군의 모해(謀害)와 백성의 포송 : 24~30
『 24 시위대 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25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칠 인과 국민을 초모하는 군대 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 바 국민 육십 명이라 26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
유다 국가의 정객들이 북방 원수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하나님의 종의 말을 불순종하다가 육체 심판을 당하는 모습이다(렘 15:2 참조). 거룩히 택하셨던 구약 성민이 예레미야를 무시했을 때 당했던 육체심판이나, 거듭난 기독교 성도가 종말에 다시 예언하는 스룹바벨의 다림줄(슥 4:10) 말씀을 불순종할 때 잔인한 군주(사 19:4), 이방인(계 11:1~2)에게 넘겨져 당하는 대환난이나 동일한 내용이다. 성경은 시대를 초월한 만고불변의 진리말씀이다. 영혼구원에만 익숙해 있는 기독교는 "육체구원"이라는 말을 꽤나 생소해하지만, 종말에는 영과 육이 더불어 아름다운 새 시대인 천년왕국에 들어가야 하기에 북방 칼에 육체가 죽는다면 이는 주께서 주시고자 하는 온전히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노아 홍수 때 죽어 옥에 갇혔다가 벧전 3:19~20절에 살아난 셋의 후손들을 기억하는가? 이와 같은 일은 종말에 다시 한 번 재현될 것이다.
십자가 보혈로 영혼구원 얻었다고 계시록과 예언서를 무시하던 자들은 북방 칼에 육체가 죽어 천년왕국이 끝날 때까지 옥에 있다가 마지막 부활 때(계 20:7~15) 가서야 살아나게 된다. 다시 한 번 당당히 말하는 것은 십자가 보혈이 담긴 복음서와 편지서는 영혼 구원에 관계된 말씀이요(벧전 1:9, 히 10:39),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여 피로 산 말씀(계 5:5~7)은 천지를 뒤집어 엎는 심판 시(時)에(학 2:6, 21~) 육체의 구원에 관계된 말씀이라는 것이다.
『 28
느부갓네살의 사로잡아 옮긴 백성이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이요 29
느부갓네살의 십팔 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옮긴 자가 팔백삼십이 인이요 30 느부갓네살의
이십삼 년에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옮긴 유다인이 칠백사십오 인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인이었더라 』
첫 번째 포로는 3,023명(28절)이라 하였는데, 사실 이어서 석달 왕노릇한 여호야긴 왕이 잡혀갈 때 18,000 명이 더 잡혀갔었다(왕하 24:11~16) . 두 번째로는 832명(29절)이 잡혀갔고, 마지막 세 번째에는 745명(30절)이 잡혀갔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멸망 4년 후에 된 일이다(B.C.583). 그러니 잡혀간 총 숫자는 22,600 명이다. 본문에 4,600 인이란 총수는 여기 본문 서책의 수효만 통합한 것이다.
4. 여호야긴의 출옥과 우대 : 31~34
『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월 이십오 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32 그에게 선히 말하고 그의 위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33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 그의 쓸 것은 날마다 바벨론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던 여호야긴이 에윌므로닥으로 말미암아 석방되어
선한 대접을 받게 된 사실이 적혀 있다.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3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옥살이를 한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의 아들 에월므로닥 통치 원년에
석방되긴 하였어도, 이는 렘 22:24~30절의 예언이 철저히 시행됐음을 입증해 준다.
어김없이 이루어지고야 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려워 떨 줄 아는 것이야말로 인생(人生)의
최고 지혜이자 가치가 될 것이다. 아멘.
- 끝 -
†. 본 예레미야 서책 강해를 끝마치며 회고해 볼 때 하나님의 한없고 크신 사랑으로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 종말에 있을 북방환난을 2,600 년 전에 미리 고하고 보여주셨습니다. 눈물의 선지자(렘 9:13, 애 3:56) 예레미야는 기록한 말씀을 받고 받은 말씀이 실행되기까지 자기 민족을 구원하려고 해산수고를 다하였으나 패역한 백성은 끝까지 듣지 않고 고집하다가 바벨론에 잡혀갔습니다. 인간 종말인 지금도 이 예레미야 서책의 예언이 재연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참으로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정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로 약속하였으니 곧 새 언약(31:31~)과 새 일 창조의 약속입니다(31:21~). 이 두 가지 역사로써 영과 육을 구원하시되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하여 창조의 본목적을 반드시 이루고야 마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레미야서가 계시록과 더불어 완벽히 다시 예언되면 하나님은 다시금 회복된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인간들로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리게 하실 것이니 엎드려 한없는 감사를 올릴 뿐입니다.
모든 영광을 우리 주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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