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주의와 인격


(1) 자본주의와 인격

인간이라는 것은 자본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격이 자본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못산다는 범위에서 국한된다는 것은 빛이 아니고 흑암이라고 본다 (사 5:8-14).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자본을 위하여 인생을 낸 것이 아니고 모든 만물을 인류에게 사용할 특권을 맡긴 것이니 인격이 자본을 따른다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가 아니다 (마 6:31-32).

인격이 자본을 지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될 것인데 현실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정치 아래서 남을 속이고 심지어 지도자까지도 뇌물을 받고 불의의 삯을 받고 심지어 위정적인 행동을 하여 백성의 피를 빤다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망치는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미 7:3-6). 우리는 신의 축복이 자본이요, 축복속에서 준 자본을 인간 사회의 복리를 위하여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주의의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인격은 오히려 멸망의 자식이 될 것이다 (암 8:4-10).

강 해 : 이 인격이라는 것은 자본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못산다는 것인데 그 인격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는 것을 여기서 말했습니다. 그저 자본만 있으면 된다는 여기에서 돈 하나를 모으겠다는 여기에서 별아별 짓을 해서라도 돈을 모으면 된다는 그런 인격을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고 그래서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것을 정말 공산주의 같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자본주의라야지 하나님의 축복을 믿지 않고 내가 남을 속여서라도 돈을 모아본다는 그것은 멸망의 자식이라...!

그래서 옛날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도 다 자본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 자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본이됐는데, 그래서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의 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소돔 고모라가 이방에게 다 포로가 되고 롯을 빼앗길 그 때에 아브라함이가 가서 그 소돔 고모라에 있는 자기 조카를 구원하기 위하여 싸워 승리할 그 때에 적군이 가졌던 물건을 다 아브라함을 주니 나는 안 가지겠다고, 이걸 가진다면 모든 사람이 당신네가 준 자본으로 내가 잘산다고 분명히 그럴거니까 영광이 안 된다는 거야. 나는 하나님이 축복하면은 되는 것이니까 절대에 나는 이걸 안가지겠다고 그랬단 말이야. 그것이 진짜 진정한 인격이라는 거요. 하나님이 주면 나는 자본이 있고 하나님이 준 자본을 가지고서 나는 남을 살리기 위해서 이 자본을 사용한다. 이것이 진정한 인격을 가진 자본주의입니다.

양심을 속여서 거짓을 해서라도 돈을 모아야 된다는 것이라든지 또는 하나님 보다도 돈을 더 생각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 보다도 세상 자본을 더 중요시하고 이렇게 나가는 그 자본주의라는 것은 실지는 그것도 멸망의 자식이라 그말입니다.

 

(2) 봉건주의와 인격

인생이라는 것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라는 것이 대자연을 창조한 신의 거룩한 뜻이니 이 원칙을 떠나서 어떤 자를 섬겨야만 살고 섬기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봉건이라는 것은 인류사회를 발전 차원보다도 오히려 개인적인 영리의 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 (사 10:1-3).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 외에 딴 것을 섬긴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될 것이니 봉건주의적인 사회라 하는 것은 인생을 노예화 시키는 폐단이 있게 되며 오히려 발전보다도 사람을 기계화 시키는 퇴보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 죄가 되고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우상이 되므로 망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사 31:1-4).

강 해 : 봉건주의라는 것은 그 인격을 우상화 시키는 동시에 이건 하나님과는 다 원수가 되는 이러한 그 인격이 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을 섬겨야 살고 섬기지 않으면 그 사람 권리 아래 죽는다는 것.

섬기는 사람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남을 이렇게 억압하는 사람은 남을 착취한 압박하는 죄로 말미암아서 반드시 그건 망하는 거라 그말이야요. 이건 죄악의 세상이라 그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외에는 섬길이가 없다는 유일신 종교적인 사상이라야 발전을 가져오게 돼 있지 어떤 인물 하나가 나와서 주권을 쥐고 그 사람을 섬겨야만 그 나라가 살 수 있고 그 사람을 반대하면 하여튼 못산다는 그것이라는건 이건 사람이 다 노예가 되는 인격이 되고 만다는 말이야요. 다 이제 하나님만을 섬기려고 그래야지 하나님 외에 딴것을 섬기려는 것은 다 우상이 된다 그말입니다.

 

(3) 공산주의와 인격

우리는 먹기 위하여 사는 인생이 아니요, 살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다. 삶이라는 자체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니 오늘의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짓밟고 빵으로만 산다는 주의에서 전 인류에게 하나같이 빵을 먹게 만든다는 것은 동물의 세계를 이룰 우려가 있다 (계 13:6-8).

공산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 축복을 받은 자가 물욕을 떠난 양심에서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다는 것은 기독교 세계에도 있어야 할 일이다 (행 4:32-35).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짓밟고 남을 죽이고서 남의 것을 빼앗아서 먹자는 그 정신은 도둑의 정신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 북방에서 나오는 공산주의라는 것은 근본 사상이 사람을 동물화시키는 사상이니 이 주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짐승의 사상을 가지고 빵 한 조각을 위하여 움직이는 동물의 생활이 된다.

짐승을 먹이는 어떤 목장과 같이 한 사람이 먹이를 한데 모아놓고 때를 따라 먹이를 주는 식이 된다 (나 2:8-13). 짐승이 일만해도 아무런 삯을 받지않고 먹기만 하면 되는 식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원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하나같이 먹고 즐겁게 사는 것을 새 시대라고 보는 것이다 (슥 9:16-17).

강 해 : 공산이라는 것은 말 체로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꼭 같이 먹자는 것. 그러나 그 정신사상이 바로 됐느냐 못됐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가 돼요. 그래서 만일 어떤 사람이 부자가 돼 가지고서 자본이 많은 사람이 자기 혼자 먹을라 그러지 않고 자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가난한 사람같이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한다는 이거야 말로 참 이상적인 국가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빈민을 짓밟고 하나님의 축복을 미신화시키고 또 부자를 때려 없애고 죽이고 나눠먹자는 이런 정신 그 자체는 벌써 도둑이 되니까 이것은 배가 고픈 짐승이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그런 것에 불과하단 말이요. 그래서 그 공산주의 사상의 인격이라는 것은 사람이 한 동물성을 띠고마는 그런 폐단이 됩니다. 지금 저 북한에 가면 그저 일을 많이 하면 밥을 많이 주고, 적게 하면 적게 주고, 안하면 안주고 개인의 어떤 소망이나 어떤 활동을 절대에 주지않고 꼭 공산주의가 일 하라는 대로 일만 하면 된다는 그런 것은 절대에 사람의 사상이나 그 정신활동을 다 망가뜨리는 이러한 증거입니다.

평화통일의 합의가 성사됐다고 모두들 떠들어대지만 절대 이것은 내가 볼 때는요, 평화통일이 올 수 있습니까 ? 그건 안됩니다. 우리가 공산당을 따라가면야 되지요. 공산당 하자는 대로! 예 ? 그것은 내가 볼 때는 평화통일이라는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있을 수 없어요. 공산주의와 우리와 싸우지 말고 지내보자는 그정도까지는 되겠지마는 어떻게 평화통일이 됩니까 ? 우리는 이제부터 싸우지 말고 너희 공산주의는 공산주의고 우리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면 우리는 자본주의 해서 살고 당신네는 공산주의 해서 살면서 우리 제발 싸우지 말고 이제부터는 피를 흘리지 말자 그렇게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 그런 정도는 되겠지만 평화통일이라 그럴 것 같으면 어떻게 통일을 가져올 겁니까 ?

우리 대통령의 말을 북한, 아니 공산당이 들어줄까요 ? 공산당을, 아니 우리 대통령(박정희)이 따라갈까요 ? 만일 공산당 하자는 대로 따라 할 바에는 그게 뭡니까 ? 그렇찮아요 ? 절대로 만일 평화통일로서 완전한 평화가 온다면 성경이 거짓말이죠 ? 맞아요 ? 그 필요 있습니까 ? 그건 안됩니다. 그러니까 그저 반공 반공하니까 다 좋다고. 반공 반공 하더니 또 평화 좋다고 그런다면 이 민족은 아무런 사상이 없는 바람에 불려가는 부평초같은 인간들이라 그말이야요. 그래서 절대에 공산주의 인격이란 그 자체는 유물론 사상이요, 하나님이 없다는 거요, 사람이 고등동물이라는 건데 절대 공산주의적인 사상이 들어가 놓으면 그 인격은 도저히 더 향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른게 아니요. 아무것도 없어요. 사람은 고등동물이라는 거야. 그저 잘 먹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거야. 그러니 "죄가 어딨냐?" 그거죠. "어디에 하나님 있냐?"

사람이 그저 먹고픈 대로 먹고 오늘이고 내일 모레고 그냥 죽어지면 그만인 사람이 된다면 하필이면 종교가 무슨 필요 있냐 ? 공산 사상이라는 자체는 그 인격이 동물성을 띤 인격이야요. 그래서 도저히 공산주의 인격 가지고서는 이거는 아무것도 못하게 돼 있습니다.

 

(4) 인본주의와 인격

피조물된 인간이 조물주를 모르고 자기밖에 없다는 것은 한 교만에 불과한 인격이니 예를들면 뚝배기가 토기장이가 필요없다는 식이다 (사 45:9). 이 사상이라는 것은 너무나 좁고 얕고 해서 자기 지식에 속은 인간이다 (사 47:10-11).

다시 말하자면 그릇이 좁은 데다가 많은 것을 담을 수 없는 것 같이 조갑지에 불과한 두뇌에다가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계의 것을 담는다는 것은 바닷물을 조갑지에 담을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아(自我)를 찾되 자기의 인격적인 존재와 할 일을 바로 찾아서 신의 섭리를 신앙하는 인격을 부인하고 자기를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교만이라고 보게된다 (사 40:22).

강 해 : 인본주의 인격인데 인본주의라는 것은 자기 주관, 자기 아는 범위에서 판단하는 겁니다. 자기 생각에 맞으면 믿고 맞지 않으면은 부인하고 자기 외에는 더이상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요. 그것이 인격 중에는 아주 발전 못하는 인격입니다. 인본주의 인격이... 요런 사상은 목사 가운데서 제일 많아요. 말만 그 사람이 목사지, 자기 생각으로 다 판단해 버리거든. 그런 목사가 발전합니까 ? 내가 모르는 것은 좀 더 알아보려는 세계에 들어가야 이것이 발전하는 거요. 자꾸 우리는 내게 맞지 않더라도 내가 알 수 없는 거라도 알아보려고 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그런 주의에 진보가 되게 돼 있지, 자기 생각에 딱 맞으면 믿고 맞지 않으면 부인해 버린다는 것은 만날 자기대로만 믿을거 아닙니까 ? 그런 사람은 좁아요 ? 넓어요 ? 예 ? 아주 좁은 사람이라요. 그런 인격은 이건 아주 발전이 없어요. 안됩니다. 안되요. 우리 인생이라는 건 내가 혹 이해가 안되고 내가 믿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좀 깊이 알아보려고 하는 그런 가운데서 진보가 있게 돼 있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딱- 다 그냥 다 미신으로 돌려버리고 부인해 버린다면 그건 자기나 믿을거 아니냔 말이야요. 무슨 필요 있습니까 ? 그래 인본주의 인격 가지고는 도저히 아무것도 일 못하게 돼 있습니다. 발전을 못하게 돼 있어요.

 

(5) 신비주의와 인격

신비라는 것은 신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한 표적과 증거를 따라서 이것만으로 만족을 삼는 인격이니 이러한 자들은 마귀의 미혹을 벗어날 수 없는 인격이다. 왜냐하면 마귀도 얼마든지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 (계 13:13-15).

인간이 신비를 따른다는 것은 미신적인 종교의 생활이니 신앙이라는 자체는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고는 - 신비만을 믿는다는 것은 신앙정로가 아니고 - 미로에서 헤매는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 (마 24:10-12). 예를 들면 술을 먹는 자가 맹목적으로 취하는 맛에 먹듯이 신비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마귀의 술을 먹는 행동이 될 것이다 (사 28:7-8).

신비를 부인할 수 없고 신비를 따르되 이것이 참 신에서 오는 것이냐 거짓 신에서 오는 것이냐는 것을 분별치 못한 신비주의는 가정을 망치고 사회를 망치는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 (사 8:20-22).

강 해 : 신비를 부인하면 인본주의가 되겠지만 신비란 자체가 그것이 합법적인 진리 안에서 내게 인격적으로 이뤄지는 신비 외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고 했다는 이것으로서 자기 흥미를 가진다는 건 이건 대단히 위험한 노선입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안에 그런 사람 많아요. 그저 환상을 본다. 계시를 본다. 입신을 한다. 이런 사람이 제일 많아요. 그럼 만날 입신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 그 무슨 필요 있소 ? 눈을 감고 드러누워서 죽었다 일어나는 무슨 필요가 있냐 말야 ? 그거, 그렇잖아요 ? 예 ? 그 필요가 있어요 ?

그래서 신비주의 인격이라는 것은 참된 발전을 가질 수 없고 한 광신적인 신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6) 복음주의와 인격

복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신을 찾는 일이 아니요, 조물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찾는 방법이다 (롬 1:1-7).

조물주는 목적을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이니 그 목적을 인간 자력으로서는 달성할 수 없음을 보고 신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언약의 말씀을 사람에게 기록하도록 한 것이 기독교의 성경이다 (사 34:16)

그러므로 복음주의라는 것은 조물주의 예정하신 뜻을 믿되 자기 주관에 붙이지 않고 신의 완전성을 믿되 완전 계약의 말씀을 그대로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이다 (계 1:3, 22:6). 이렇게 할 때에 신은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신앙자에게 역사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하고 조물주의 축복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받게 되어 영육이 아울러 완전한 신과 동행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기독교 복음주의라 하는 것이다 (계 21:3-6).

강 해 : 복음주의라는 것은 뭐냐하면은 복음은 하나님이 타락한 인생을 자기 힘으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해주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세우시고 그 언약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 역사라... 그래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이 하라는 법이 아니라 네가 할 수 없으나 내가 이렇게 해주겠다"는 언약을 세우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것이 기독교 복음이라는 것인데 그 복음주의라는게 뭐냐 ?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그 말씀대로 하나님 역사해서 나는 할 수 없는 그것을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복음주의라 그 말이야요. (새일성가 53장)

그런데는 아무리 내가 죄를 이길려고 해도 이길 수가 없었댔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믿으면 마음에 깨끗함을 주고, 평화를 주고, 완전히 내가 성결함을 주마. 그런 그 말씀이 있는데 예수를 믿었더니 내 맘이 인간성이 다 죽어버리고 죄가 생각도 나지 않고 평화롭고 깨끗해진단 말야.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한 그대로 내게 지혜가 오고, 능력이 오고, 권세가 오고, 새 힘이 오고, 축복이 오고, 보호가 있고, 이것을 체험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주의적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본문대로만 믿고 나가면 이것은 말세에 하나님이 해주실라는 말씀인데 그 말씀이 내 생활에 분명히 이뤄지는 것이요, 내 인격이 이뤄지는 것이요, 또는 이 세계가 이뤄지는 동시에 앞으로... 여러분 ! 늘 갖고 다닙니까 ? 더러 때놨다 갖고 다니는 겁니까 ? 예 ? 깨끗한 것은 늘 깨끗한거요 ? 이따금 저기다 붙여가지고 다닙니까 ? 그래 말씀에는 깨끗한게 늘 내게 깨끗해 있고 말씀에 은혜가 오는게 늘 은혜가 오고 그게 있음으로 계속으로 내게 기쁨과 평안과 만족이 항상 말씀대로 보존되니까 이것이 내 진리 체험이라 그거요.

아무리 내가 죽어서 천당을 가보고 입신해 천당을 갔다 왔다 하더라도 내 맘에 죄가 생기고 내 맘이 깨끗지 못하고 불만이 있고 골치가 덤덤하고 몸이 피곤하고 그것이 무슨 필요 있겠습니까 ? 그렇다면 필요 있습니까 ? 또 아무리 우리가 이상한 음성을 듣고 뭘 봤다 하더라도 내게 성경대로 내 중심에 성결과 평화가, 능력과 권세가 내게 이뤄지는 그 산 체험이 없다면 무슨 필요가 있으며 또는 이따만큼 이렇다 합시다, 엣다 오늘 아침에 불이 강하더라 그러면은 그것이 뜨겁기만 하지 다시는 내 것이 없어요. 그 뜨겁기는 뜨겁더라도 도로 맘이 복잡해지고 맘에 죄가 또 생기고 그런데 뜨겁다고만 떡- 그래요. 앗따 또 뜨겁더라. 작년 이맘 때에 뜨거워 보더니 오늘에 또 뜨거워 봤는데 야 좋다. 그런다고 그거 무슨 필요가 있냐 그거야... 또 한번은 생수가 온다고 머리는 시원해 봤습니다. 야, 오늘 아침에 참 시원하더라 그러고서는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몇달 있다 떡 - 야, 몇달 전에 시원하더니 또 시원하더라. 그 무슨 필요가 있냐 말이야요. 나는 그거요. 뜨거운 불이 오면 항상 이 맘이 뜨거워 있어 가지고 맘에 성결을 보존하고 생수가 머리에 내리니까 십년동안을 계속으로 내려 소성을 시키더니 그담에는 새힘으로 바꿔져 새힘이 항상 내게 들어와요 언제나. 아무리 내가 일해도 힘이 안들고 점점 몸이 강건해진단 말이야요.

좋소 ? 나쁩니까 ? 예 ? 이것이 복음적 인격이라는 거요. 알아요 ? 그래야지 어느 시간에는 은혜가 좀 있고 또 어느 시간에는 냉냉하다. 그렇다면 무슨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합니까 ? 언제는 힘을 좀 주더니 언제는 또 맥이 빠지게 만들더니 언제는 또 뜨겁게 만들더니 그 무슨 하나님이 그렇소 ? 그 말이 안돼요. 하나님은 깨끗하게 하면 계속으로 깨끗하게 하고 평화로우면 계속으로 평화롭게 하고 힘이 있으면 계속 힘이 있게 만들어야지 그것이 완전한 신의 역사 아니겠어요 ? 그렇소 ? 안그렇소 ? 예 ? 나뭇가지가 언제는 죽었다가 언제는 살아났다가 언제는 순이 나오다가 언제는 또 마르다가 그러면 그놈의 나뭇가지 쓰겠습니까 ? 써요 ? 그 어디 써요 ?

나의 체험은 그거야요. 계속으로 정상적으로 항상 계속되어 이뤄지는 그 체험을 내 가지고 있단 말이예요. 전 이걸 보지도 못해요. 듣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내게 흘러온 그것이 계속 흘러와서 내 인격을 이룬다 말예요. 그래서 난 이 복음주의 인격을 이걸로 봅니다. 알겠습니까 ? 그래서 이거라야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인격이요, 이 인격이라야 새 시대 이룰 수 있는 인격이 아니겠습니까 ? 그렇잖아요 ?

우린 과학 초월이죠 ? 복음은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세계에서 과학적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해주마고 말씀한 것이 복음인데 이것을 믿는 자는 과학을 초월한 역사가 진리대로 와서 내 인격이 이뤄지는 이것이 복음주의 인격이라 그 말이예요.

인격은 그 주의에 의해 좌우가 되는데 첫째는 무슨 주의야요 ? 자본주의와 인격. 또 봉건주의와 인격. 공산주의와 인격. 신비주의와 인격. 인본주의와 인격. 복음주의와 인격. 그러면 복음주의의 인격이라야 이것은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 있지요 ? 그 인격이라야 최후에 승리를 이루고 새 시대를 이룰 수 있는 인격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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