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예수
- 마
27:27~46 -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35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46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서 론
하나님은 공의의 신이시니 공의의 죄 대가를 아들에게 받게 하실 적에 사정없이 아들을 버리셨다. 이것을 본다면 죄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는 말을 했던 것이다. 이제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하는 예수의 고난을 우리는 본문으로 깊이 생각한다.
1. 머리의 괴로움 (27-31)
가장 괴로운 것은 머리가 괴로운 것이라고 본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갈대 몽둥이로 머리를 칠 때에 그 괴로움을 무엇으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어찌하여 하나님은 아들에게 이런 괴로움을 주셨는가! (이유인즉) 무엇보다도 인간이 머리의 정신작용을 죄 되게 사용하면서 간사한 죄를 많이 진 대가를 (예수께서) 친히 받으신 것이다. 가장 큰 죄는 짐짓 머리 속으로 연구하므로써 지은 죄가 너무 큰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죄를 위하여 목이 잘린다든지 간단한 사형을 한다는 것보다도 갖은 괴로움을 다 당하게 하실 때에 먼저는 머리에 괴로움을 당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머리의 정신작용으로 죄를 짓는 일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라는 것을 이로써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기독교 안에서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머리에 생각으로 악한 계획을 도모하는 자들도 있다고 본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책잡기 위하여 갖은 모략의 방법을 쓴 일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
2. 입의 괴로움 (33-34)
인간들이 입으로 지은 죄라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에 신자라 하면서 심지어 주의 종이라 하면서 입으로 하지 못할 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한 일인가?
우리 주님께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은 (인간이) 입술로 지은 죄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이다.
3. 수족의 괴로움 (35)
가장 무서운 죄는 손과 발로 지은 죄인 것이다. 손과 발에 못박혀 장정된 몸으로서 허공에 달려 있을 때에 살점은 찢어지고 뼈가 어그러지는 쓰라리고 아픈 그 고통(시 22:16)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괴로운 것은 사정없는 쇠못으로 힘줄을 뚫어 나무에 못박은 그 자리이니 얼마나 쓰라리고 고통스러울까?
우리 죄를 인하여 친히 나무에 달리신 예수(신 21:22~23. 벧전 2:24~25) |
나는 1953년 5월에 조용한 산을 찾아가 기도할 적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 된 모양이 똑똑히 나타났다. 못자욱에서 흐르는 피는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못자욱에 (손발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뼈마디가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주님이 고통 중에 시달리는 모양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는 너를 인하여 이렇게 고난을 받았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 하는 음성이 거듭 들려왔다. 이러한 광경을 약 3시간 동안이나 나타나 보일 때에 그때에 나는 작정하기를 아무리 괴로운 일이 오고 억울한 일을 만난다 해도 나는 원망치 않고 강한 마음으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 후로부터 이날까지 20여년 간 이상하게도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는 것과 같은 원망스러운 일을 계속으로 당하게 될 때에 십자가 앞에서 작정한 그 마음 잃지 않고 나오는 중에 십자가를 통하여 오는 은총을 너무나 많이 받을 때에 더욱 감사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무리 억울함을 당한다 하여도 우리 주님의 당하신 고난에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참을 자격은 없지만 억울함을 당할 때에 십자가를 바라만 보면 괴로움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4. 귀의 괴로움 (39-44)
인간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 싫어하고 마귀의 말을 듣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많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극도로 괴롭히는 모욕과 훼방을 받게 되었다.
지나가는 자마다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하는 말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는 말이 "남은 구원을 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가 없도다" 하면서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믿겠노라" 하였다.
인간이 볼 때는 이러한 자리(처지)에까지 떨어진 것이 십자가이다. 과연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누가 (그때 그 비참한 예수가) 이때의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리요..., 주님의 십자가는 완악한 인간에 의해 사정없이 매를 맞고 사정없이 쓰라림을 당하고 사정없이 버림을 당한 십자가였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5. 고통의 큰 소리 (45-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이 슬픈 소리, 고통의 소리, 천지가 캄캄하고 산천이 슬퍼할 고통의 소리였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할 때에 조금인들 죄를 용납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조금이라도 죄를 용납한다면 죄 값으로 고통을 당한 예수님의 저주가 되는 일이라고 본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버림당한 그 일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는 열매가 되었다.
결 론
공의로우신 하나님! 공의로 (인간이 지은) 죄의 대가를 아들에게 짊어지우고 사정없이 버린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은 오늘날까지 절대로 택한 자를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이 되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아들을 버리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에게 무엇을 더 아낄 것이 있겠는가? 이제부터 우리가 그 사랑 속에서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그 능력을 받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버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인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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