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南北정상회담 뇌물’ 결론


특검, DJ 서면조사도 검토/ 노대통령 ‘搜査 제한 발언’파문

대북송금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송두환 특별검사팀이 지난 28일 이기호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긴급체포하는 등 현대그룹불법대출 관련자들을 잇달아 검거하면서 대북비밀송금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뇌물이었음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 청와대 외압 사실 확인

그동안 김대중 정부는 현대의 4,000억원 대출과정에 외압은 없었으며 대출된 자금 또한 ‘순수한 경협대가’이지 ‘남북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당시 산업은행장이었던 이근영 전 금융감독원장과 이기호 전 수석이 산은의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각각 업무상 배임과 직권남용혐의로 검거됨으로써 대출과정에서의 청와대 외압이 사실로 확인됐다. 특검은 또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소환하고, 필요할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서면조사 방식으로 조사할 것을 검토 중이다.

대출된 자금의 용도에 대해서도 특검측은 지난 14일 “대북비밀송금은 경협대가가 아닌 남북정상회담 대가”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 상태다.

실제로 대북비밀송금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난 국가정보원은 당시 외환은행측에 “미국 CIA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비밀송금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같은 날 확인됐다.

이밖에도 대출자금이 정상회담의 대가라는 증거는 속속 밝혀지고 있다. 우선 이 전 수석이 이 전 위원장을 만나 현대상선대출을 청탁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불과 일주일여 남긴 2000년 6월 3일이었다. 이후 통상 한달 이상 걸리는 대출은 현대상선이 대출신청을 한 지 이틀만인 6월 7일 이뤄졌고 현대상선은 다시 이틀 후인 6월 9일 대출받은 4,000억원 중 2,235억원을 국정원의 도움으로 김정일의 비자금계좌에 송금했다.

또 현대의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한 대출이 현대의 주 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이 아닌 국책은행인 산은에서 이뤄진 것도 의문이다. 게다가 대북경협사업을 증명해줄 근거자료인‘현대-북한사업계약서’는 송금 두 달 뒤인 2000년 8월 21일에야 체결됐다.


▶ 불법송금 결과는 평화 ‘파괴’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 현행법을 정면으로 어겨가며 단행된 산업은행 불법대출과 대북비밀송금이 가져온 것은 김대중 정부가 주장해온 ‘화해와 평화’가 아닌 북한의 군사력증강과 핵무장이라는 ‘화해와 평화의 파괴’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국방부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금강산달러가 지원된 직후인 99년 카자흐스탄으로부터 미그기 40대를 구입했고 경제난으로 91년 이후 10년 동안 중단됐던 대규모 기동훈련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부터 재개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비밀리에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계속해 현대의 대북비밀송금이 핵무기개발비용으로 전용됐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 막대한 현금을 동맹국 몰래 적성국가에 ‘전쟁비용’으로 제공한 ‘이적행위’를 통해 한반도 안보의 중심축인 한미동맹관계를 약화시켰다는 것도 또 다른 문제점이다.


▶ `퍼주기 정책’으로 되돌아가

지난 정권의 대북송금 당사자들은 대북지원 자체에 절대성을 부여했고 절차상의 합법성과 정당성 그리고 국민적 합의마저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노무현정부에서도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방미 당시 “무조건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순 없다”는 전향적 태도를 번복하며 기존의 ‘퍼주기식 대북정책’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지난 23일 합의된 제5차 대북경협회담에서는 북한의 ‘재난발언’과 같은 폭언을 들으면서까지 핵문제에 대한 합의문 게재는 물론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지난 27일에도 노 대통령은 대북지원의 절대성을 재확인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민주당 의원 부부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대북송금 특검수사와 관련,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정책, 햇볕정책을 확고히 계승하겠으며 남북관계를 해칠 만한 수사로 달려가지 않게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경우에도 대북지원은 이뤄져야 한다며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특검수사의 법적한계를 대통령 자신이 설정해버린 셈이다.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는 “무원칙한 퍼주기로 추진된 김대중식 햇볕정책은 북한의 변화는커녕 핵무기개발이라는 엄청난 재앙으로 돌아왔다”면서 “노무현 정권이 다시 햇볕정책을 답습한다면 북한측은 이를 역이용해 그들의 핵개발을 기정사실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욱기자 gurkhan@futurekorea.co.kr
제51호  2003.6.9.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