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보는 한국 사회


반한(反韓) 자학사관(自虐史觀)과 친북교육


【저자 소개】

이 글을 쓴 분은 일본『現代 코리아』연구소 주임 연구원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씨이다. 1956년 도쿄 출신으로 주한 일본 대사관 전문 연구원 등을 거쳐 1984년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현직에 재직중이며,『現代코리아』의 편집장 그리고 도쿄 기독교 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북한과 한국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냈다. 특히『김정일과 김대중』『테러 국가 북한에 속지 말라』등의 저서를 펴낸 인사로, 납북된 일본인 구출을 위한 전국 협의회의 부회장직을 겸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등장 배경】

한국은 지금 어디로 가려하고 있는 것일까. 약 30년 동안 한국을 객관적 입장에서 봐 온 나로서, 지금과 같은 두려움을 가진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우호 관계에 있으며, 각기 미국과는 안전보장조약 그리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있다. 또한 한미일의 3개국은 사실상의 군사 동맹국에 가까운 관계에 놓여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문화권에 속하는 대륙 국가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38도선으로 인하여 해양 국가가 되면서 자유무역의 체제를 유지해 옴으로써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선진국 문턱에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한국에는 미국 중심의 3국간 군사 동맹의 한 국가라는 사실과 해양 국가로서의 발전상을 부정하려는 정치 집단과 그 추종 세력이 국민의 절반을 점하고 있다. 특히 그 가운데에는 한국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현저하게 많다. 한국은 지금의 번영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멸의 길을 이미 걷기 시작하고 있는 것인지.... 최악의 경우, 주한 미군의 철수, 김정일 정권과의 연방제 국가연합의 결성, 김정일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가능성마저 엿보이고 있다고 봐야 하는지.

한국이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작년 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은 작년 11월 초순 무렵에만 해도, 아무도 그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의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후보 중 3위로서, 여당인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직후의 붐 속에서도 역시 별것 아니였다.『과격한 좌익』이라는 인상이 강하였고,『전후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좌익 내부에서조차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군사 정권에 의해 탄압받던 주요 신문사였던 동아일보사에서 해고된 기자들이 만든 좌파 월간지『말』의 12월 1일자 발행 12월호에서도『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기적일 것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투표할 때까지 일어난 2가지의 일이 상황을 일변시켰다. 하나는 한때 돌변적으로 지지를 얻던 현대 중공업과 한국축구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정몽준 후보의 거취였다. 당시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1위로 독주하고 있었으나, 2위인 정몽준 후보와 3위인 노무현 후보가 전대미문의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후보 경선에서 근소한 차로 노무현 후부가 단일후보가 됨으로써 후보의 단일화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어 지지율을 확대시켰다. 또한 투표 직전에는 정몽준씨가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를 선언했지만, 노무현 후보 진영의 위기의식을 감싸는데 오히려 보탬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후보가 바람을 타게 된 또 다른 한 가지는 작년 6월, 여중생 2명이 사망한 미군 특수 장갑차 교통사고에 대한 재판 결과 때문이었다. 11월 20일, 미군 군법회의에서 과실치사죄가 적용된 미군 병사 2명에게 무죄가 언도됨으로써, 그로 인한 반미 감정이 순식간에 또한 세차게 확산되었고, 그 같은 반미 정서가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크게 돕는 결과로 작용했다.


노무현 후보는 당선 전에,『왜 미국을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라면서, 미국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자신임을 늘 강조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물이 결과적으로는 반미 세력의 지지에 의해 당선이 된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안전보장이, 변함없이 계속된 미국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으며, 그와 같은 여건 속에서 성장과 번영이 성취된 국가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성격 자체가 변해 버렸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되기까지의 4번에 걸친 대선 입후보 때마다 상대 진영으로부터『김대중은 좌익이다』라는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나는 좌익이 아니고 보수주의자다』라는 홍보전을 필사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그와 같은 것이 선거전의 주요 쟁점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노무현 후보는, 좌익 성향의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미국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는데도 그것이 도리어 자랑거리가 되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분명히 작년 4월 노무현씨가 여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었을 당시만 해도 그에게는 신선한 면이 없지 않았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못 갔지만 변호사가 되어 인권 변호사로서 활약하고 있었다. 정치적인 파벌을 갖고 있지도 않았기에 정치자금을 무리하게 긁어모을 사정도 없었으니 금전적인 구설수와도 인연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대를 포함하여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그의 청렴이라는 것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60퍼센트의 지지를 받을 정도의 붐이 일었다.

그러나 매스컴과 반대 세력에 의한 그에 대한 검증으로『그의 발언 등이 몹시 과격하다』고 판명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90년대 초 현대 재벌의 파업 현장을 찾아가 노동자들 앞에서『국회의원, 검사, 학자와 부자들은 지금 다 죽어도 한국은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노동자가 없으면 한국은 살아가지 못합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라며 선동했다.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선동이다.

또한『통일 후 대한민국의 체제는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가』라는 질문에『현 단계에서 그에 대해 답변하는 것을 삼가하겠다.』라고 말을 이었다. 북한을 자극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헌법은『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지지할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발언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도 노무현씨의 과격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작년 5월에 예정되었던 한국 국방백서 최신판의 발행이 무기 연기되는 사태가 있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주적』을 둘러싼 논의 때문이었다. 국방백서에는 1995〜1996년도판 이후『북한을 주적으로 가정』한다 고 기술되어 있었으나, 북한이 2000년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화해의 시대에 주적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하였다. 그와 같은 북한의 비난 때문에 김대중 정권은『주적』이라는 말을 기술하지 않으려 했으나, 보수 진영으로부터의 비난을 두려워한 나머지 최종적으로 국방 백서 그 자체를 발행하지 않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김대중 정권도『북한이 주적』이라는 안보관을 정면에서 뒤집을 수는 없었지만, 노무현씨는『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한 것이다.

부인을 둘러싼 언동을 보아도 노무현씨의 좌경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부인의 부친(고인) 즉 노무현씨의 장인이 되는 인물은 남노당의 간부였다. 한국전쟁 당시의 1950년 6월부터 9월에 걸쳐 한반도의 거의 전국토를 북한이 지배하고 있던 시기에 지하에 잠복하고 있던 남노당 간부들이 세상을 만났다. 노무현씨의 장인도 경상북도 창원군의 치안 책임자(군당 부위원장)가 되었다. 당시 그 군에서 인민재판으로『반동분자』로 지목된 9명의 주민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장인은 그 후 UN군이 북진한 다음 수복이 되어 그 사건에 가담한 것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과 살인죄로 무기 징역형으로 수형 생활중 옥중 병사하였다.

물론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북한에서와 같은『가족 연좌제도』는 없다. 결혼 전 이미 사망한 부인의 부친 건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노무현 후보는 작년 봄 어느 연설에서『반동 세력이 내 처를 공격하고 있다. 한국의 군인들이 “빨갱이”의 딸을 영부인으로 맞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대통령 되기 위해 이혼하란 말이냐. 나는 내 처를 사랑한다.』라며 부인을 변호하고『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합니다. 누더기 옷을 입고 억압받으며 끝없는 시달림을 받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듭시다.』라고 외쳤다. 이 정도면 장인이 누더기 옷을 입고 무기 징역살이했다는 사실을 비유한 말같이 들릴 수도 있다. 하물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장인 묘소를 찾아 성묘할 때, 장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피해자 가족들에 대하여는 묘지 참배는커녕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전 같으면 그것만으로도 대통령 후보로서는 실격일 것이다.


【북한의 대남 공작과 반한사관(反韓史觀)의 만연】

또 하나, 노무현씨의 사상 배경을 짚어보는 데 놓칠 수없는 발언이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 있어서, 건국 직후 친일파를 철저하게 처단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고 발언했다. 이것은 민족의 순수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보다는 북한이 정통성이 있다는 역사 인식, 역사관과 표리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인즉 지금 그 같은 역사 인식의 만연 현상은, 사회 전체를 좌경화시키는 최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이 만연되고 있는 현실 배후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대남 공작 흉계가 있음은 불문가지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직후에 일본 통치에 협력하였던 친일파 처단을 위해 특별위원회를 설립하고 몇 차례의 심의를 가졌을 뿐 처단 문제는 우물쭈물하고 말았다. 국내에 있던 일부의 독립 운동가와 국내에서 옥고를 치른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친일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 외에도 관료들의 처리 문제에 직면했다. 경찰, 군인, 행정관리, 경제 전문가들 모두는 일본에 의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들 전부를 추방할 경우에는 국가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였으며, 능력 있는 실무자만을 선발 기용한다 해도 역시 일본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뿐이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만 해도 일본 육사를 나온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이 해방 후에, 일본 식민지 지배의 재부활을 위해 음모를 꾸민 일 같은 것은 한번도 없었다. 대한민국 건국 후 그들은 저마다가 가진 전문 기술을 십분 발휘하면서 조국 한국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교육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말하기보다는 한국에 충성을 다 바친 충직한 애국자들이었다고 말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측은『한국의 혈액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다』『대한민국은 건국 때부터 불순하다』라면서 한국에 대해 계속 시비를 걸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 자신은 친일파들을 완전히 솎아 낸 다음『순수』한 민족성을 지닌 사람들로 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또한, 6. 25전쟁 휴전 이후, 미군이 계속 남한에 주둔해 오고 있는 것에 대하여서도,『한국은 자신의 안전보장을 외세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군을 즉시 돌려보냈으며, 급속한 경제 성장이 아직은 미진하지만 민족의 힘, 자주의 역량으로 착실하게 국가 건설을 해 왔다』라며 뽐내듯 선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관을 어떤 학자는『반한사관』이라고도 하며, 또 어떤 이는『자학사관』이라고도 한다. 쉬운 말로 표현한다면,『한민족』(韓民族)이라는 간판을 앞세운 좌경 민족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이 성취한 오늘날의 번영 그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역사관인 것이다.

한국은 6. 25전쟁 이후, 반공을 국시로 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법으로 금지해 왔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의 민주화로 정치사상도 어느 정도 자유스러워졌다. 한편, 북한과의 사상적인 연계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금지된 상태였지만 공산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그 자체는 위법이 아닌 것으로 되어 버렸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양자간의 경제적 성취도는 그 격차가 뚜렷하여 졌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 공산주의 사상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자유스러운 언론공간(言論空間)을 북한 공작 정치의 광장이 되도록 허용해 줌으로써 지금에 와서 보는 것과 같은 좌경 민족주의 또는 좌경 국가주의가 확산되는 결과를 낳게 한 것이다.

당시의 좌익에는 2가지의 조류(潮流)가 있었다. 주된 적(敵)을 논쟁거리로 꾸며대는 그들이기에, 그들은 미 제국주의 또는 국내의 독점자본주의를 대상으로, 다시 말하면 2단계 혁명론이냐 아니면 1단계 혁명론이냐의 2가지였다. 전자는, 한국은 아직도 식민지 봉건체제하에 있으며, 주된 적인 미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 해방투쟁이 선결돼야 한다는 제1단계 혁명론이다. 후자는, 70년대의 고도성장 이후 변형된 형태의 자본주의 체제로 나가고 있는 한국 내의 독점자본주의의 상징인 부르주아지를 타도하여 사회주의의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제2단계 혁명론이다.

전자는 북한과 사상을 같이하는 주사파이며 후자는 순수한 마르크스-레닌주의파다. 개인적으로 이론이 뛰어난 활동가 중에는 마르크스-레닌 주의자가 많았지만, 주사파들은 북한으로부터 자금지원도 받고 조직 이론에 대한 지도도 받아 정교한 운동을 전개하는 등으로 최종적으로는 주사파가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특기 할만한 것은 1987년 6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대통령 간접 선거제 유지를 위한 호헌 결정에 대한 반발로 대대적인 데모가 일어났었다. 결과적으로 직접 선거제가 채택은 되었으나, 그때의 그 데모를 주도한 지도부가 북한 사상을 추종하는 주사파였던 것이다. 그들 운동 방식은 수준급 이상으로 잘 조직되어 있었으면서도 과격한 언동 같은 행위는 일절 삼갔다.

당시 지하 지도부의 일원이었지만 지금은 전향하여 반 김정일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때의 지하 지도부는 북한으로부터 그 어떠한 지령도 직접 받고 있지 않은 상태였으나, 주체사상을 스스로 학습하면서 대중의 구미에 맞는 슬로건을 고안해 내는 등의 운동 방침을 확정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대통령 직접선거제가 대중에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슬로건이었으므로, 그 이외의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돌이나 화염병을 투척하는 행동도 안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중이 보는 앞에서는 진압 기동대원들로부터 채고 질질 끌려가면서 체포되는 상황이 벌어지도록 놔두었다고 한다. 진짜 용감한 투쟁은 기동대와의 충돌이 아니라 기동대로부터 채고 체포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대중을 자기들 편으로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이면에서 북한 주장에 동조하고 있던 과격한 인간들이 일체의 내색도 없이 대통령 직선제만을 주장하고 비폭력을 가장,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기동대로부터 채고 질질 끌려가는 장면만을 연출 하면서 시민들을 자기편으로 포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른 쪽의 마르크스-레닌주의파는, 헬멧을 쓰고 화염병을 투척하는 등의 심한 투쟁을 일삼았다. 정치적 요구인 슬로건도 대통령 직선제의 개헌도 아닌 새로운 헌법 제정과 그를 위한 제헌국회의 소집이었는데, 이것으로는 대중의 지지를 얻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같은 친북적인 조직들이 80년대 들어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을 때 표면에서 활동하던 당시의 지도부 운동가 요원 한사람의 말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우리는 당초 혁명의 주체가 프롤레타리아트라고 생각해서 대학을 고만두고 위장 노동자로 공장에 들어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화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바른 이론을 알게 되었다. 눈앞의 적이 부르주아지가 아니고 미 제국주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거대한 세력이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힘만으로는 승리할 수가 없다. 고로, 각계각층에 가면을 쓰고 위장 침투해야만 한다. 즉, 정계, 학계,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계, 교육계 그리고 언론계 등의 각 분야에 침투, 통일전선을 형성함으로써 미 제국주의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북한을 지지하는 학생 운동권이 대학의 학생회장직을 장악한 다음, 학생회 주최의 직장 구직 강좌를 개설하면서, 공무원과 교사 채용 응시 방법과 대책 등을 참가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무원이 된 자가 있는가 하면 정치가가 된 자들도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 대학에 안 갔기 때문에 학생운동 경험은 없지만, 그의 측근 중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운동권 출신들이다.

한국에서의 좌경, 반미, 민족주의의 만연은 여중생 교통 사고사와 같은 특정 사건에 의해 촉발되는 일시적인 풍조가 아니라, 좌경 민족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각계각층에 침투해 있는 결과 때문인 것이다.

【반미, 친북 교육하는 전교조의 등장】

그와 같은 각계각층에 대한 침투 공작으로 나타난 하나의 현상으로, 한국의 보수 진영에서 지금 크게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 어린 학생들에 대한 반미, 친북의 민족주의 교육이다. 전교조 출판국에서 발행한 한 권의 부교재가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전교조는 1989년에 결성되어 민주화, 좌경 활동, 노동운동의 상승 현상에 편승하면서, 90년대에 그 세력을 급속도로 확대시켜 나아갔다.『교사도 노동자이다』라는 스로건이 논의의 대상이 되어 비합법 단체로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김대중 정권 때인 99년에 합법화 되었다. 교육 현장에서의 영향력을 제법 발휘하는 것인지, 지난 봄 전교조와 뜻을 달리하는 교장 한 사람의 자살 사건이 있었음을 놓고 볼 때, 전교조 교사들의 과격함과 좌경화 언동 등은 전성시대의 일본 교원 노조에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전교조가 발행한 부교재는 초, 중, 고교의 교사용으로 제목이『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다. 표제에는 북한 인민군 병사와 붉은 스카프를 두른 북한 사회주의 소년단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게재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전쟁은 강대국이 도발할 수도 있다』라는 항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지난 94년 미국이 우리에게 한 마디 사전 통보조차 없이 북 핵발전소가 있는 영변을 폭격하려 한 사실이 한참 뒤에야 밝혀졌다. 영변 폭격은 전쟁이고, 전쟁은 우리의 생명과 삶을 대량으로 파괴시킨다. 당연히 미국의 북폭 계획은 우리의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었다. 또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핵 선제공격 정책을 공언하고 있다. “핵”이 북녘 땅에 떨어지면 한반도 전역은 핵 오염지대가 되고, 민족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이 또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전쟁은 “북”만이 아니라, 미국 등 주변 강대국으로부터도 발생할 수 있고, 또한 99년 서해교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남북간의 사소한 충돌로도 발생할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전쟁 위험 요소를 낮추고 제거하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의 대립, 일본의 군국주의화 등이 가속화 되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의 안보 대상을 “북”에 국한시켜 사고하는 것은 대단히 협소한 사고이다』

결국, 전쟁은 미국이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교육하자는 내용인 것이다. 북한과는 같은 민족이기에 화해할 수도 있는데, 미국이 방해를 하고 있다는, 광의의 틀로 묶어진 좌경, 반미의 민족주의에 다름 아니다.

전교조의 반미, 친북 교육에 관한 실례를 든다면 한이 없다.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부대의 허(許)라는 병사에게 초등학교 학생들로부터『같은 민족인 북한 군인들과는 서로 죽이는 짓 하지 마셔요.』『오만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니 경계하셔야 돼요』라는 등등의 위문편지가 날아와 조사를 해 보니,『반미 민족주의 교육 실천 방안의 일환인 일선 장병에게 편지쓰기』라는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때는 수업 시간에 부시 대통령을『전쟁광』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학생들을 데모에 참가시키거나 반미극(反美劇)을 연기시키는 등의 교육을 전개했다. 그 같은 지나친 반미 교육으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은 대미 관계를 배려해서인지, 지난 4월에는 교육부에 실태 조사를 지시하기도 하였다.

【불행한 교통사고를『살인』으로 몰고 간 의도적 사회운동】

미군에 의한 여중생 교통사고 치사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이 나자, 80년대부터 운동권에 속했던 좌경 민족주의 세력이 대통령 선거전을 향해 대대적인 정치 선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2월 14일의 투표를 겨냥하는 식으로 계획된 서울에서의 반미 집회에는 5만의 시민이 참여했다. 주최는『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신효순 신미선양 살인사건 범국민 대책위원회』라는 단체로, 14일을『주체 회복의 날』로 명명하고는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전국에서 일제히 행동할 것을 호소했다.
『인생의 꽃이 피기도 전에 저승으로 간 두 여중생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국민의 위대한 힘으로 짓밟힌 주권을 회복하여 민족의 자존을 만방에 떨치는 성스러운 투쟁을 위해 일어납시다.』

결국『미군이 노상에서 여중생을 깔아 죽이고도 무죄라는 것은 한국의 주권이 박탈당한 것』이라는 논리다. 그렇다면, 두 여중생의 사망 사고가 주최 측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살인』적인『사건』이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현장을 답사해 보니, 사고가 난 장소는 거의 직각에 가까운 오른쪽 카브를 돌자마자 위로 올라가는 언덕길로 앞면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도로였다.
사고는 미군 차량 대열의 한 차량이 그 직각에 가까운 커브를 돌자마자 맞은편에서 사고 차량을 향해 다가오던 별도의 차량을 발견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갑자기 핸들을 꺾은 찰라 걸어가고 있던 여중생 2명을 뒤쪽에서 덮치게 된 것이다. 둘은 즉사했다.

여중생들은 도로 갓길을 걷고 있었지만 도로가 좁기 때문에 2대의 미군 차량이 스칠 때에는 도로 전체를 차지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서의 차량은 우측통행이다. 보행자가 좌측으로 걷고 있을 때는, 뒤에서 가는 차량에 의해 식별하기가 용이하지만, 여중생들은 길 우측에서 걷고 있었기 때문에 차량에서 식별되기도 어려웠고 급히 피할 수도 없는 채 깔리고 만 것이다. 도로에서의 좋지 않은 시야 조건, 좁은 도로 폭, 피해자의 보행 위치 등 불운이 겹친 사고이지 주최측이 말하는 것과 같은『살인 사건』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는 없었다.

물론, 사고의 결과가 중대하므로 미군측에서도 성의를 다하여 사고 수습에 임하였다. 그 후 사고를 일으킨 병사가 소속된 주한 미군 제2사단에서는 사고 다음날 조의금 100만원씩을 각 유족에게 보내고, 그 다음날에는 사단장이 유족을 조문하고 부대 영내의 교회에서 추도 예배를 갖기도 했다. 군의 예산이 아닌 사단 장병들이 모금한 성금으로 사고 현장에 추모비를 건립하였으며, 중대장, 중대의 주임 원사, 소대장, 소대의 원사 등 4명에 대해 징계 (서면 유책)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국 정부로서도 피해자 1인당 1억 9000만원의 배상금을 유족과의 합의하에 한국 정부와 같이 지불하고, 주한 미국 대사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사과하고, 파월 국무장관도 한국 외무부장관과의 회담에서 사과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11월에 주미 대사를 통해 사과하고 반미 데모 직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 때 직접 사과하기까지 했다. 교통사고 문제로 정부가 이 정도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 14일의 반미 집회에서는『SOFA(주한미군 지위협정)개정하라』『미선 효선양을 살려 내라!』『살인 미군 처벌하라!』라는 구호를 제창하기도 하고는『부시는 사죄하라. 무릎 꿇고 사죄하라!』라며 기세를 올리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의도적인 반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회 후인 17일에 주최측인『국민대책 위원회』가 배포한 신문에 사건의 경위가 상술되어 있었는데, 미군측의 세심한 배려에 따른 사후처리와 징계처분, 추모비 건립, 유족의 배상금 수령 등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반미의 태풍이 12월에 불어 닥침으로써, 많은 국민이 과격하다면서 거리를 두고 있던 노무현 후보였지만, 그는 그 바람을 타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한국 위기에 회심의 미소짓는 김정일】

한편, 보수파 야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는, 휘몰아치는 폭풍우 앞에서 망연자실한 듯, 반미 데모 대열에 자신이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주최측으로부터 거절당하는 추태를 빚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주한미군 지위협정이 반드시 개정되도록 하겠다는 공약 선언까지 하면서 반미의 물결 속으로 영합하려 한 것이다.
선거전에서 그가 호소한 내용들은 노무현의 행정경험 부족과 김대중정권의 부패정치 사건에 대한 비판뿐이었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후원으로 건국되었고, 한반도에서의 망국의 위기를 맞으면서도 미국을 주축으로 한 UN군의 개입으로 수호된 국가이다. 그 후에도 한미간의 군사동맹으로 국가의 안전보장이 확보된 가운데 자유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정치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도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운하게 2명의 여중생을 사망케 한 사고를 일으킨 미군을 살인자로 지칭하고, 주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목청을 높인다는 것은, 전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과 같은 역사관에 근거한 반미 운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반미 기운을 탄 노무현 후보가 그의 지지세를 확장하고 있을 때, 보수정당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최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진영은『국익을 생각해야 한다.』『전후, 대한민국이 이룩한 번영의 기초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냉정히 생각하자』고 반론도 안 했을 뿐 아니라 호소도 안 했다. 일반적으로 볼 때, 그 선거 본래의 최대 쟁점은 한미 동맹의 평가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회창 진영마저 한미 동맹의 재평가를 주장하는 듯한 내색을 보임으로써 그러한 쟁점들이 명확하게 분별되지 못한 채 한국 사회의 축은 좌로 기울었던 것이다.

자국의 건국 이래의 역사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으면서, 적대 국가가 선전하는 좌경 민족주의에 오염된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 대통령 후보가 나타나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 선전 공작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상황이 한국 위기의 본질이다. 그러나 그 역으로 김정일에게는 첫째가는 재산이 된 셈이다.

미국은 지금, 북한의 핵개발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으면서, 미사일과 중무기의 전방 배치도 허용하지 않으며, 납치를 포함한 인권 문제에 관하여서도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톤을 높이면서 경제 제재까지를 시야에 넣고 대북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테러리스트와 테러 지원 국가들에게 시간이 주어지면, 대량 살상무기를 갖게 하는 기회를 줄뿐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테러리스트에 대하여서는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대상에는 북한도 포함된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태로 경제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수년 후,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므로, 이대로 앉아서 그 추이를 지켜볼 그와 같은 부시 정권이 아닐 것이다.

한편, 북한이 미국에 양보를 하면 체제의 위기가 초래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양보를 못 할 것이고, 대화로 물꼬를 트지 못할 경우에는 경제 제재를 당할 가능성만 높아진다. 그렇게 될 때에, 김정일이 기댈 수 있는 오직 한 가닥의 실오라기는,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사상을 가진 한국인 밖에 없다. 이라크 전쟁 때, 프랑스가 행한 역할을 예로 비유한다면, 북한이 반보 양보해서 대량 살상무기 사찰을 수용한다고 표명할 때『사찰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립시다.』라는 등의 전술로서 경제 제재를 반대하는 역할을 노무현 대통령이 담당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반미 민족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북한으로부터『경제 제재는 우리(북한)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다. 그 대신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을 각오하라』라는 협박을 받는 한국은, 내적으로『미국이 한국과 상의 없이 전쟁을 하려고 하니 한국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된다.』『미군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 한반도 내에서의 평화를 위해 미군은 물러가야 한다.』라는 여론이 들끓게 되어 결국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력히 반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경제 제재를 안 하면 전쟁도 안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다는 생각을 많은 한국인들이 가질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또는 일본을 언제든지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한반도에서의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아야 할 한국이 지원해야 할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약체(弱體)로 변해 있는 상황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야말로 한국의 안보에 있어서도 결정적 중대한 위기가 되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군사력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대와 오키나와, 미자와(三澤)에 전개되어 있는 최신예 미 공군력이 북한의 공격이 있을 때, 제공권을 장악하여 오키나와의 해병대를 동해안으로부터 역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주일 미군 기지인 오키나와와 미자와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여 1주일 정도 활주로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해병대 수송용 헬리콥터를 파괴만 하면, 그 사이에 서울 함락은 가능하다는 시나리오 때문에 북한은 미사일과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해서라도 북한의 핵과 대량 살상 무기 그리고 미사일의 개발을 포기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북한의 핵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하기 위함인데 그 개발을 못하게 하기 위해 왜 한국이 희생해야만 하는가.』라는 발상을 좌경 민족주의에 심취된 다수의 젊은이들이 가지게 되었다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발상이 일본에까지 튀어, 일본의 좌익들과 한국의 반미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미국에 항의할 가능성마저 높다. 실제, 한국의 반미 민족주의 운동가가 오키나와를 빈번히 왕래하면서 미군기지 반대운동 교류를 획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한미 동맹과 한일 우호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한국과 미일과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망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위기가 현실 상황으로 금후 수개월 이내에 닥쳐 올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한국의『풀뿌리 보수파』와 연합해야】

한국 국민은 선거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택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안보 위기를 쟁점으로 삼지 못하였던 한나라당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한 가운데, 단 한 가지의 희망이 있다면, 풀뿌리인 우파, 보수파 진영 상호간에서『대한민국이 이룩한 지금의 번영이 회진화 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라는 의식이 점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우파, 보수파 단체들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반공 세미나를 호텔 같은 곳에서 개최하는 등의 형태로 활동해 왔다. 그러나 좌파는 반체제파이기 때문에 등사판으로 만든 삐라를 돌리는 정도였지만,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입장은 역전 되었다. 보수파에 대한 보조금 같은 것은 일절 없어진 반면, 좌파 계통의 시민 단체들에게는 보조금이 돌려졌다. 그러면서도 보수파는 김대중 정권 5년간을 꾹 참기만 하면 보수 정권이 다시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철저한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 종반에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급부상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수파에서는 위기감을 진지하게 갖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좌경화되어『민족』이라는 말 하나에, 6. 25전쟁의 실상도 모른 채 북한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게 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한나라당보다도 풀뿌리 보수파들이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성토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한나라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서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가정에서 집안 식구 상대의 선거운동』이라는 유세전을 전개했던 것이다. 6.25전쟁의 실상을 비롯하여 국가의 안보가 한미 동맹의 담보로 유지되어 왔다는 점, 60년대 이후의 경제 성장이 자유민주주의 테두리 안에서 땀을 흘리면서 성취한 것이지만,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그 기초였다는 사실,--- 그와 같은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피땀 흘려 이룩한 현재의 번영을 완전 부정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등등을, 아버지 세대가 대학생을 위시한 젊은 세대를 상대로 하여 집안에서 설득 교육시켰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12월에 들어서면서는『집안 선거전』이라고까지 말할만한 가정 내에서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에 표 찍으면 용돈 없다, 또는 등록금 못 대준다고까지 말하는 부모도 있었다. 자식들에 대한 설득뿐만이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투표를 아예 못하도록 스키장에 보내어 투표를 기권하게 만든 가정도 있었다.
관념적인 좌경 민족주의가 아니면서, 대한민국 수호의 정당한 애국심을 외치고 있는 풀뿌리 보수파의 중심적 존재가 한국에서 최대 발행부수를 가지고 있는 일간신문『조선일보』이다. 12월 14일의 반미 시위 집회 때에는 데모대로부터 수많은 달걀 투척이 조선일보 건물에 날아들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친미 반 김정일』이냐, 아니면 좌경 민족주의로 대한민국의 존재 가치를 업신여기면서 남북간 화해를 앞세우는『반미 친 김정일』이냐고 하는 숨겨진 선거전의 쟁점을 가지고 싸운 것이 조선일보였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직전인 12월 17일, 조선일보에 게재된『우리 국민은 불안해 못 살겠다. 지금이야말로 아버지 어머니들이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라는 제하의 광고 의견란에 풀뿌리 보수파에서 느끼는 위기감이 잘 표현되어 있기 에 그 일부를 소개한다.

『아버지 어머니들이 흘린 피땀과 눈물 덕에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그들이 던진 오늘의 그 달걀 양만 가지고도 북한 주민 수백 명의 저녁 한 끼를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귀중한 음식을 증오심을 불태우기 위해 없애 버리고 있는 세상모르는 젊은이들의 부모들은 도대체 지금 무엇들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온 언론을 비방하여 우리들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선동에 날뛰는 자녀들에게 그와 같은 달걀 살 용돈을 준 비겁한 기성세대들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5년 동안에 300만 명의 동족이 굶어 죽은 것을 눈앞에 두고도 시멘트벽에 계란을 던지는 젊은이들의 행동을 방치한다는 것이야말로 죄를 짓는 것과 같다.』

『오늘 광화문(14일의 반미 집회)에는 이런 전단이 살포되었다.「부시 대통령은 공개 사과하라」「살인 미군, 한국 법정에서 처벌하라」「주한 미군 철수」. 미군의 교통사고에 대하여 2번이나 사과한 부시 대통령에게 이번에는 공개 사과하라는 것인즉, 공개 사과를 한다면 그 때에는 서울에 와서 사과하라고 할 것이다.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우리들 혈맹의 군인을 (반 미파는)살인범으로 몰아세우면서 저속한 말들을 써 가며 사회의 분위기를 해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애도 열기」라고 미화 격려하고 있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춥고 배고팠던 시절, 우리들은 삶은 달걀 한 개로 허기를 때웠다. 그 같은 귀중한 달걀을 가지고 조국을 저주하는 흉기로 사용하고 있는 그 홍위병들은, 우리 해군 함정이 김정일 지시를 받은 북한 해군 함정의 기습 공격으로 20여명의 전사상자를 냈을 때에 침묵하고 있었다. 적의 수괴에는 굴복하면서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의 대통령에게는 악랄하게 대하는 세상모르는 자들을 기성세대가 들고 일어서서 지도하고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편 그들을 선동하여 조국에 대한 반역과 불효를 고무하고 있는 어용 방송, 일부의 신문, 정치 세력은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아버지 어머니들이 들고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과거 반세기에 걸쳐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를 지켜 오면서 근대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공동체 대한민국을 이루어 놓는 과정에서 아무런 공헌도 한 것 없는 김정일 추종 세력이 여러분의 아들딸들을 속여 조국을 배반하게 하고 부모에 대하여는 불효를 하도록 교사(敎唆)하고 있습니다. 어용 방송들은 그들과 영합하고 있으며 정치 세력은 그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자신에 찬 신념으로 그들에게 애국과 예의에 대한 교양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6.25의 남침이 일어났을 때, 미국인들은 세계지도의 어느 곳에 위치한 나라인지조차도 모르는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수10만의 젊은이들이 전쟁터를 향해 달려왔으며, 그중에서 30여만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우리들이 친북 좌익 세력들을 확실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미국인들은 우리 한국 국민을 경멸할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는 민사상의 책임을 지고 배상금까지 지불한 젊은 2명의 미군을 감옥에 집어넣어라” 라고 외치면서 한
달간씩이나 반미 규탄을 하고 있는 한국 국민과 언론(무죄판결 때문에)들에 대하여 “참으로 의리를 모르는 나라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반미 데모를 이용하는 우리 사회 내부에는 김정일 세력과 홍의병 세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일어서서 아들딸들과 밤을 새워 가며 토론을 벌이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 세대들이 겪은 고통과 노력 그리고 조국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바른 정의감을 가르쳐야 합니다.』

금년 3월 1일 그 풀뿌리의 보수파가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한『반핵, 반 김정일 자유 통일 국민대회』에는 반미 집회 때의 2배가 넘는 10만 군중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손과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UN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6.25전쟁 당시의 군가『전우야 잘 자거라』라든가 서울 올림픽 때에 애창되던 애국의 노래『아! 아! 대한민국』을 합창하기도 했다.

풀뿌리 보수파는 아직 정당으로서 정치 세력화 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을 수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는 북한에 의해 납치된 피해자 가족들도 참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정권은 납치 문제를 냉담하게 계속 무시해 오고 있지만 풀뿌리 보수파는 납치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5월 방미 때와 6월의 일본 방문 때에는, 자신이 민족주의자라는 입장을 앞세우기보다는, 친미 친일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국가 정보원의 수장(원장)과 간부(인사와 예산을 관장하는 기획조정실장) 인사에서는, 국회 청문회의 반대를 외면해 가면서 좌파 변호사와 친북 학자(와다 가스기 동대 교수의 제자)를 기용하는 등, 주요 권력 중추 인사에서 서서히 좌파 인물들을 포진시키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보수 언론으로 대표되는 조선일보에 대하여서는 유형무형의 압력을 강화하고 있어『친북, 반미』기운이 고조되고 있는 때와 맞물리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북한의 핵 개발 문제와 납치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금년이 가장 중요한 해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이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한 가지 결점이 있다면, 한국내의 그 같은 보수파와 일본의 보수파 그리고 친미적인 미일 안보 조약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세력간의 교류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보수층 입장에서 보면, 한국인 모두는『반일』이고, 역사 교과서와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까지도 간섭해 오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까지만 해도 친일파가 있었지만, 전두환 정권 이후로는 한국의 우파들까지도 역사 카드를 내밀었기 때문에 보수파 내에서조차 친한파가 거의 없어져 가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대북정책에 있어서, 국내외적인 여론을 납치 문제와 핵 개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양국 간 보수파의 연대는 필수 불가결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누구와 연합을 해야 되는 것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의 현 정권이 아니다. 납치 사건을 확실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풀뿌리 보수파일 수밖에 없다. 보수파간의 대화가 시작되면 어떻든 민족주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는 없겠지만, 민족이 다르다는 것은 역사 인식이 다르다 함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같은 사실만으로는 일체화가 될 수없다는 전제를 공유하게 되기 때문에 “김정일 배제” 라는 공통의 긴급 목표를 위해 연대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날이었던 지난 6월 25일을 전후하여 주목할 만한 행사들이 서울에서 연속 있었다. 21일에는 3월과 마찬가지로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반핵, 반김 자유 통일 국민대회』가 개최되었고, 23일〜24일에는『한국전쟁 53주년 납치된 사람들의 송환을 요구하는 한일 공동 대회』가 한국납치 피해자 가족회의 주최로 개최되어 일본으로부터 요코다시게루(橫田滋),사키에(早紀江)씨 등 피납자 가족회 요원들과 니시무라싱고(西村眞悟), 히라사와가쓰에이(平澤勝榮)씨 등, 국회내에 구성된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의원 연맹 의원들, 그리고 아라키(荒木)씨와 필자 등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구출을 위한 전국 협의회”의 관계자들이 초청되었었다. 이 때에 김정일의 테러 정권과 맞서 싸울 한일 보수파의 연합체가 처음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한국이 좌경화의 위험한 지경으로 빠지고 있는 듯 보이는 그 같은 현상이, 근 1〜2년 사이에 급속하게 일어난 것은 결코 아니다. 20년 동안 서서히 좌경 민족주의가 사회 전반에 확산된 결과에 기인하며, 그와 같은 사회현상의 변화하는 선상에서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으며, 그로 인하여 김정일은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사실에 대하여 위기감을 갖고 있는 한국의 보수파가 표면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는 현실이, 일본 측 입장에서는 시기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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