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땅의 왕들을 조종하는가  


김성일


두로 왕은 다윗에게 왕궁을 지어 헌납함으로써 겨우 멸망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때 두로 왕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페니키아의 정신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를 만들었다. 이를 페닉스(Phoenix) 즉 불사조(不死鳥)라 하며 그것이 지금 세상을 뒤덮고 있다.



짐승을 탄 여자

지중해 가운데 있는 크레타섬에 들어가서 새로운 신들을 만들어낸 가나안 문화는 헬라로 들어갔고 헬라는 가나안 문화의 큰 실험장이 되었다. 헬라 신화에서는 가나안 문화가 헬라에 들어간 경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는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딸인 에우로페(Europa)가 해변에서 놀고 있을 때 황소로 변하여 그녀에게로 다가가 몸을 굽혔다. 그를 쓰다듬어본 에우로페는 감촉이 너무 좋아 그 등에 올라탔다.(Michael Grant ‘그리스-로마 신화사전’)

제우스는 그 부친 크로노스를 축출하고 신들의 지도자가 된 반역의 신이었고 이것은 가나안에서 엘신을 몰아내고 집권한 바알 신과 같은 유형이다. 에우로페가 등에 올라타자 황소는 바다를 헤엄쳐서 크레타 섬으로 건너갔다. 크레타 섬에서 황소는 제우스의 모습으로 돌아가 에우로페와 정을 통하여 미노스를 낳았다. 이 미노스가 헬라에 들어간 미노스 문명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미노스 문명은 헬라 문명의 근원이 되었고 헬라 문명은 로마의 뿌리가 되었으며 로마는 온 유럽을 지배했다. 유럽(Europe)이란 이름은 에우로페(Europa)에서 나왔으며 유럽 사람들은 에우로페를 유럽 문명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황소를 탄 여자의 상은 유럽의 상징이 되었고 EU의 통일 화폐 ‘유러(EURO)’의 디자인에도 등장했다. 즉 유럽 문명의 모체는 페니키아 즉 가나안이었다.

레바논 산맥의 서쪽에 있는 지중해변에는 여러 개의 항구들이 발달했다. 우가릿 점토판이 출토되어 유명한 우가릿과 지금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 그리고 굴지의 무역항이었던 시돈과 두로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돈과 두로는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항구로 이들 두 항구는 같은 왕이 다스렸고(‘유대고대사’ 8-13) 창세기에 의하면 시돈은 가나안의 장자였다.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더니 이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창 10:15~18).

헬라에서는 레바논 산맥의 서쪽 지역을 페니키아라고 불렀다. 페니키아(Phoenicia)는 한글 성경에서 ‘베니게’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붉은빛 물감을 의미하며 셈어의 ‘가나안’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가나안 사람들의 거래품목 중에서 특히 붉은 옷감이 유명했기 때문이었고 가나안이라는 말은 동시에 ‘장사꾼’을 의미하기도 했다. 성경에서 페니키아 왕은 주로 두로 왕 으로 나타난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겔 28:2).

두로의 수호신은 사랑의 여신 아스다롯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크레타 섬에 들어가 아스다롯 여신을 만들어 두로에 모셔왔던 것이다. 이 두로의 왕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다윗에게 왕궁을 지어 헌납했고(삼하 5:11)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기술자 히람을 보내 도왔다(왕상 7:14).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에 두로 왕 엣바알은 그 딸 이세벨을 북왕국의 아합왕에게 시집보냈다.

두로의 수호신 아스다롯은 크레타섬에서 헬라로 들어가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 이름은 거품을 의미하는 말로 그녀가 바다 가운데서 태어났음을 가리킨다. 아프로디테는 헬라의 무역항이었던 고린도의 수호신이 되었다. 자유연애를 조장하는 이 음란의 여신은 두로의 장사꾼들이 만든 신이었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치와 허영에 빠지게 하고 장사꾼의 장사를 돕는 신이었다.

아비를 쫓아낸 반역의 신 바알과 자유연애를 조장하는 음란의 여신 아스다롯이 주도하는 가나안 문화는 헬라로 들어갔고 로마가 그것을 계승하였으며 오늘날 그 바알의 반역과 아스다롯의 음란이 서양 문명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가나안 정신을 계승하여 인본주의 철학을 만들어내고 오늘날 비인간적인 서양 사상의 바탕을 마련해 놓은 철학자가 바로 플라톤이라는 사람이었다.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부잣집 아들이며 운동선수로 그 이름의 뜻은 어깨가 넓다는 뜻이었다.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며 영향을 받은 그는 철학자가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으로 인류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적 실험들의 교과서가 된 ‘공화국’이라는 글을 썼다. 소위 이상적 국가체제를 자기 생각대로 엮어낸 이 글은 아직도 정치적인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을 부모들로부터 격리시켜 집단 교육을 하는데서 이 바보들의 공화국은 시작된다. 나서부터 20세까지 체육과 음악을 교육하고 그 성과에 대한 시험을 거쳐 무자비한 도태가 시작된다. 이 시험에서 낙제한 자들은 점원, 공장노동자, 농부 등이 되고 합격한 자들은 다시 10년 동안 교육을 받아 두번째 시험을 치른다. 여기서 낙제하면 공무원이나 군대의 장교 등에 임관된다.

이 두번의 시험을 거쳐 선발된 자들은 철학과 정치학을 5년 동안 배우고 다시 15년간의 현장 실습을 거쳐 50세가 되면 비로소 지도자 그룹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재산과 여자를 공유하는 집단 생활을 하게 되고 모든 생식에는 우생학적 관리가 실시된다. 참으로 단순하고 어이없는 이 발상이 뜻밖에도 인류를 커다란 비극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20세기를 주도했던 두개의 정치적 이념은 칼 맑스의 구상을 추종했던 공산주의와 경제활동의 자유를 신봉하는 자본주의였는데 어느 이념을 채택한 국가이든 그 체제를 ‘공화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똑같았다. 그만하면 플라톤의 발상은 20세기에 정치적 지지를 받아낸 셈이었다. 그리고 그 체제들은 모두 상층부의 지도 계급이 대중을 이끌어가는 피라미드식 조직을 채택하고 있었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왕들’이란 바로 이 피라미드의 상부에 올라앉은 통치자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피라미드식 조직에는 유리한 점도 있어서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 모세도 이 조직을 이용한 적이 있다(출 18:25). 그러나 이 조직의 약점은 그 지도자가 실족하면 그 모든 조직이 한꺼번에 파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 피라미드의 상부를 조종하는 세력이 등장한다.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계 17:1).

그리고 유리 바다 속의 광야에는 짐승을 탄 여자가 나타났다.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 17:3~4).



복수의 새


짐승을 탄 여자라면 우리는 황소를 탄 여자 에우로페 즉 두로 왕의 딸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그 여자는 많은 물 위에 앉았다고 했는데 이는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하여 바다 가운데 앉았다고 했던 두로의 왕(겔 28:2) 즉 가나안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물은 곧 모든 나라와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 17:15).

그 여자가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배후의 조종자였고(계 17:18) 그녀가 타고 있는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용의 아들 즉 적그리스도였다.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無底坑)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계 17:8).

이 짐승에 대해서는 이미 13장에도 기록되어 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龍)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계 13:1-2).

여기서 용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계 12:9).

하나님을 반역하여 바알 신과 아스다롯 여신을 만들어낸 가나안 정신은 그 특산품인 자주빛 옷과 붉은빛 옷을 걸치고 손에는 땅의 모든 사람을 취하게 하는 포도주의 금잔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마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Mystery)이라 큰 바벨론(Babylon the Great)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The Mother of Harlots And Abominations of The Earth)라 하였더라”(계 17:5).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란 무엇일까?  역사의 배후에 숨어서 온갖 은밀한 일들을 조종해 온 악한 세력을 말한다. 또 음녀의 이마에 적혀진 ‘큰 바벨론’이란 바로 세상의 권세를 장악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가나안 정신이야말로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과 음란한 일들을 만들어내고 이끌어온 모체(母體)임을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 길러내신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진입하여 가나안 민족의 운명이 위태롭게 되었을 때 두로 왕은 다윗에게 왕궁을 지어 헌납함으로써 겨우 멸망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때 두로 왕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페니키아의 정신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를 만들었다. 이를 페닉스(Phoenix) 즉 불사조(不死鳥)라 하며 그것이 지금 세상을 뒤덮고 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내고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가나안의 정신들이다. 인간을 해방한다면서 도처에서 인류의 피를 흘리고 있는 혁명정신과 모두가 신이 될 수 있다는 범신론과 어른을 능멸하는 불복종 문화는 모두 바알의 사상으로부터 온 것이며 섹스와 마약과 무질서로 세상을 취하게 하는 감각문화는 아스다롯의 포도주 잔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륜을 무너뜨리고 가정을 파괴하는 모든 일들은 이제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들(엡 2:2)에 의해 전파를 타고 지구를 덮기 시작했다. 사단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공중에 가득차고 인륜을 어지럽히는 환생설이 안방으로 흘러든다. 그 환생설은 아무 근거도 없는 전생의 관계를 내세워 가족관계의 혼란을 일으키고 가정의 가치를 부인하며 근친상간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인류를 미혹하는 이런 거짓말들이 20세기말에 학문의 탈을 쓰고 궤변적 논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힘을 얻은 가나안 정신은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다원주의를 내걸었고 형제애로 위장된 그들의 평화 이론이 세상을 휩쓸었다. 모든 종교가 서로 이해하고 관용하며 21세기를 평화의 시대로 만들자는 ‘새 시대(New Age)사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두로야 네 가운데 있는 박사가 네 선장이 되었도다”(겔 27:8).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제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이미 이러한 생각에 동조하는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이 자주 회합을 가졌다. 함께 모여 각기 자기네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계속되는 그들의 논의는 결국 모든 신이 다 같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고 통합된 종교가 생기게 되면 적그리스도가 그 경배받는 자리에 앉을 것이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

바알과 아스다롯을 만들어낸 가나안 정신이 그토록 집요하게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 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복수’의 사상 때문이다. 그것은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축출당한 사단의 복수이기도 하다. 복수의 신 ‘호루스’의 눈은 피라미드 위에서 세상을 노려보고 복수때문에 고민하는 ‘햄릿(Hamlet)’의 이름도 ‘함의 아들’ 즉 ‘가나안’을 의미한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계 17:6).

모든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의 위장된 평화에 찬성하게 되면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박해가 시작될 것이다. 21세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진실한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위장된 평화에 열광하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당하는 고난의 계절이 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막 13:29).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계 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