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계시록 1:1∼20
제 목 : 주 재림과 촛대교회
『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하나님은 완전한 약속을 세우신 후, 완전한 역사를 통하여 완전한 승리를 이루어 성도에게 완전 안식을 주고자 하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성 인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그 피로 말미암아 세계 인류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구원을 완성하신 것이다. 이날까지 전파된 십자가의 도(道)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되(영혼구원 / 벧전 1:9. 히10:39) 의로운 자를 사망에서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자녀(요 1:12) 삼아 교회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것은 은혜로써 죄를 사해 주고, 구원하는 동시에 성령으로 보호, 감찰, 장성시켜 주는 새 언약(눅 22:20)의 역사였다.
그러나 끝을 맺는 종말의 역사에서는 성령 받은 기독교인 중 "우리 하나님의 종들"(계 7:3)이라 칭하는 자들이 "반드시 속히 될 일"(1절)을 올바로 알고 증거하여 주 재림 시에 임할 환란으로부터 세계의 양 떼를 살릴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작은 책 요한계시록은 살아서 주님을 맞이 할 자들이 마땅히 "읽고 듣고 지켜야"(3절) 할 내용을 완전 계시로 주신 것이다. 그 당시 계시를 본 요한은 이미 중생의 도(道)를 60여 년간 증거해 오던 자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해 밧모라는 섬에 갇혀 고난 받을 때(9절) 주께서 엄위하신 재림 주의 모양으로 나타나 종말의 비밀을 알려주신 것이니, 오늘날에도 요한과 같이 충성되이 십자가의 도(道)를 전하는 '고난의 종들'에게 이 계시를 읽고 듣고 지킬 수 있는 축복이 임할 것이다.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예수,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성부께로 심판책을 받으셨도다. 할렐루야! (계 5:7) |
예수의 계시는 성령받은 '종들'과 '교회'에게 미혹을 이기도록 지시하신 말씀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읽지도, 듣지도, 지키지도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임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주 재림기를 살고 있는 종말의 교회들은 주님의 마지막 부탁인 계시록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교회나 이방이나 매일반으로 무서운 심판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 아시아에서 출발할 촛대 교회 : 4∼6
『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
유럽(서방)에도 많은 교회가 있지만 아시아 일곱 교회에 먼저 이 계시를 써 보내게 된 것은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창 9:26).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계 10:7)이 주님 다시 오실 심판기에 아시아를 중심하여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육적 이스라엘을 향해 던진 예언은 인간 종말에 영적 이스라엘이 된 기독교가 다시금 깨달아 읽고 듣고 지켜야 될 말씀으로 조직화되어 이루어지는데(사 46:10), 예언을 받아 기록하는 사명도 아시아에, 그것을 영적 이스라엘인 세계 교회에 다시 예언할 사명도 셈의 장막 아시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과 종말의 형편이 서로 같아야만 가능한 이중 예언 성취의 구조인데, 완전하신 '일곱 영'의 역사로만 되는 것이니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를 주관하시는 완전한 신이심이 분명하다 (4).
여기서 말하는 "일곱 교회"는 계시록 9장과 같은 흑암 세력이 세계적으로 팽창할 때(악마득세) 예언서를 햇빛같이 밝혀 어두움에 빠진 종들과 교회를 살려줄 촛대교회이다. 슥 8:9절을 보면 “성전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학개,스가랴)의 입의 말을 이 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인간 종말에 세계를 살릴 순금등대 촛대교회가 학개, 스가랴서의 성취로 말미암아 세워질 것을 뜻한다.
학개 2:10∼23절을 보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뒤집어 엎을 때(종말의 심판기) 내 종 스룹바벨로 인(印)을 삼겠다고 하셨고, 그 제단의 출발(지대)은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이라 하셨다(학 2:18). 이 스룹바벨 제단의 '머릿돌' 역사로 말미암아 태산같은 적기독 세력이 평지가 된다(슥 4:7)는 스가랴의 예언은 대적을 물리치는 초막절 동방역사의 핵심이 된다(사 42:13). 지금은 주 재림이 심히 가까운 시대이니 알곡을 끌어모으는 초막절에 관한 모든 예언이 다 성취될 시기이다. 슥 14:16절에 누구든지 초막절에 올라오지 않는 자는 비를 받지 못하며, 재앙을 피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초막절이란 장막절이라고도 하는데, 이스라엘의 육체를 보호하는 절기이다(레 23:34∼43. 계 7:15). "일곱 교회"로 보여진 촛대교회의 사명은 주 재림이 심히 가까운 시대에 택한 자들의 육체를 보호하여 새 시대 천년왕국으로 인도하는 초막절 역사에 있다.
은혜시대에는 유월절 피와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본방과 이방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영혼구원)을 얻는 반면, 육체는 풀과 같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종말에는 천국보다 앞서 있는 천년왕국 성취를 중심으로 모든 역사가 진행되므로 성도의 육체가 환란에서 보호받아 새 시대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는 기독교 종말역사의 핵심 관건으로 부각된다. 고로 곡식 중 알곡들을 뽑아 곡간에 저장하는 수장절(추수감사절) 역사가 반드시 영적으로 이면화되어 이루어지되 본문에 계시된 셈의 장막 아시아에서 촛대교회가 세워져 인간 알곡들을 모아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려야 한다.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는 데 있어서는 유다의 사명이 가장 귀하다. 종말을 보여주는 구약 때에도 해 돋는 동방에 진 칠 자는 '유다 지파'라 하셨으니(민 2:3, 10:14. 삿 1:2. 슥12:7) 인간 종말의 초막절 역사에서 수두(首頭)로 지휘권을 행사할 영적 유다의 사명 역시 아시아 셈의 장막 동쪽 끝에 있게 된다. 20세기의 마지막 1백년, 즉 아시아가 다 적화되는 혁명의 불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동북아 38선 이남 지대를 철저히 보호하심으로 남겨 놓으셨다. 그 이유는 아시아에서 일어날 촛대교회의 역사로 북방 무신론 세력과 가증한 종교연합 세력을 심판하여 새 시대를 이루셔야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셈의 장막 동쪽 끝에서 동방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성경에 기록된 북방 세력의 남침 및 그 멸망에 관한 예언을 이룰 '중앙무대'가 사라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국을 절대적으로 보호해 오신 것이다.
유다의 소년 다윗과 블레셋의 대장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물맷돌(삼상 17:49)의 권세로 승리한 것같이, 종말에도 다윗의 물맷돌과 같은 스룹바벨의 머릿돌이 아시아 동방 땅 끝에서 일어나 무신론 정치세력과 가증한 에큐메니칼 종교세력을 쳐부수고 승리케 될 것이다(슥 4:7∼). 예언이란 성취되라고 있는 것이다. 성취되려면 성취시키는 제단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계시록에서는 아시아 셈의 장막에서부터 일어날 촛대교회 제단을 1장에서 예언한 것이다. 승리는 아시아 동방에서 일어나는 촛대교회에 있다. 이제 순금등대 촛대에 연합될 말세의 신실한 종들이 다 모여 거대한 인간 방주를 이루면 가증한 적그리스도 체제는 박살날 것이다. 아멘!
『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체질을 아신다(시 103:14). 우리가 사도 요한의 형제가 되어 십자가 사랑과 구속의 도리를 잘 전파하였어도 "장차 될 일"을 깨달아 세계 만방에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대로 행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을 아시고, 친히 십자가 순종을 통하여 충성의 본을 보여주셨다.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본이 되사 아버지 앞에서 충성을 다하시고 만왕의 왕이 되셨으니, 그에게 접붙은 가지인 우리도 마땅히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이나 주 재림 시, 피로 산 교회가 다음의 세 가지 모습으로 갈라짐으로써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있다.
① 주인의 마음을 가진 충성된 종들(마 24:45) ☞ 이 종들은 주인의 일을 자기의 일같이 여겨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니 바로 순교자와 변화성도들이다. 이들은 '첫째 부활'에 살아나 왕권을 받게 된다(계 20:4∼6).
② 삯꾼의 마음을 가진 종들(요 10:12) ☞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자들로서 삯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돈이 되면 열심을 내고 이득이 없으면 일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들은 미 3:5절같이 된 자들로서 돈이 삶의 목적인 자들이다. 이들은 주인의 일이야 되든 말든 내 몫만 챙기면 된다는 마음을 가졌기에 주인의 집에 심히 손해만 끼치다 심한 책망을 받고 쫓겨날 자들이다.
③ 도적의 마음을 가진 종들(요 10:10) ☞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렘 23:3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요한 12:3∼6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이사야 42:18∼25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새 일)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같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
도적질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곧 양도적질, 돈 도적질, 말씀 도적질이다. 스가랴 5장 설교를 참조하라(바로가기).
미가 3:9∼12절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지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이 되리라”
예수님처럼 충성을 다해야할 교회가 그렇지 못하고 삯꾼, 도적 떼로 변질되기 때문에 주의 재림 날에 “그를 인하여 애곡하게" 되는 것이다(7절).
먼저 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 되심을 의미한다(고전 15:20).
『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완전 승리를 이루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이 땅에 행하실 일을 보여줄 때에 그를 통해서만 은혜와 평강이 있게 되고, 그의 피로 죄에서 해방을 받은 자들에게만 그의 은혜와 평강이 있게 됨을 말씀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다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①
일반적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께서 세계 교회의 영적 근원뿐 아니라 만물의 머리가 되셨음을
의미한다(롬 12:4~5. 고전 6:15, 12장. 엡 5:30. 골 1:18).
• 엡
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골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② 종말적
144,000과 순교자, 즉 새 시대에서 왕(임금) 노릇하게 될 첫째 부활자들의 머리가
되심을 의미한다.
•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다음
말씀은 위 두 가지 의미를 통합한다.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누구든지 죄에서 해방 받은 사람은 새로 얻은 생명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제사장의 사명을 맡아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있는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누리게 되는 것이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2. 충성된 종들을 모으는 촛대 교회
: 7∼11
『
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만왕의 왕은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인데, 그때는 회개치 않은 모든 족속들이 슬피 울 때라는 것이다.
초림주를 찌른 자들은 로마병사들이요, 그 배후는 로마정권(60)과 유대교권(6)이다. 다시 그 배후를 보면 붉은 용(600)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붉은 용, 마귀, 사단은 에덴동산을 망친 옛 뱀이라 기록되어 있다(계 12:9, 20:2). 이 마귀가 오늘날까지 제 종들(가라지)을 통해 하나님의 종들(생령계통)을 죽이고 고통주며 훼방해 왔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의 종말적(현실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실 때에는 2천년 전 주님을 찌른 세력들이 살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절에서는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라고 했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2천년 전 예수님을 찌른 그 마귀가 오늘날의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필두로 하는 가증한 정권과 교권 속에서 2천년 전보다 더욱 악랄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세력은 예수님이 권세 주신(계 11:3) 두 증인(144,000)을 죽일 것이다. 이것이 곧 주님을 찌르는 행위와 같다는 것이다.
계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두 증인)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니라"
예수님이 권세 주신 두 증인 곧 144,000 명이 죽은 곳을 영적으로 소돔, 애굽에 비기면서 이곳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과 동일시했다. 이는 장소의 일치가 아니라 144,000 명의 죽음이 주님과 동행한 죽음이라는 뜻이다(계 14:4). 그러므로 인간 종말에 144,000 명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짐승)의 정책에 동참하는 모든 자들은 예수님을 찌르는 마귀 자식이 되는 것이다.
두 증인의 죽음은 한 번 났다 죽는 자연스런 은혜시대의 죽음(히 9:27)이 아니다. 죄값도 아니다(롬 6:23). 저들의 죽음은 예수님과 더불어 왕 노릇할 '영광의 첫째 부활'을 얻기 위한 죽음이다. 이 '더 좋은 부활'(히 11:35)의 신앙노선을 걸어가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을 주신 것이다.
촛대교회를 제외한 대댜수의 교회가 애곡하게 되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교회가 급속도로 변질된다는 예언대로다(사 5장). 변질이란 기독교인으로서 이방종교의 구원을 인정하는 것과 북방 무신론 세력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주 재림기에 교회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무조건 공중으로 휴거된다고 믿는 신앙이다(세대주의 종말론). 그러므로 세대주의를 따르는 교파의 목회자나 성도들은 자연히 교회의 환란통과설을 외치는 변화성도 계통 144,000 명을 대적하다가 홀연히 주님의 공중재림을 맞게 될 것이다. 주님이 3일 반 쓰러진 144,000 명을 불러 올리시기 위해 공중에 재림하시는 그 날, 저들은 '후 3년 반'의 고통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심히 두려워 떨며 후회막심 하게 된다. 주님의 재림이 소망과 기쁨이 되어야 할 기독교인이 도리어 주 재림의 날에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불신자들과 함께 애곡하게 된다면(7절) 그 어인 비극인가? 계시록을 멸시한 죄값은 그토록 비참하다.
『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므로 육적 이스라엘이 순종치 않을 때에 용서없는 재앙으로 친 것같이, 종말의 교회에게도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정통에는 알파의 정통과 오메가의 정통이 있는데, 전자는 바울의 서신이고 후자는 요한의 계시록이다. 알파의 정통성을 가진 바울이 이단 염병 소리를 들었고, 모든 사도들 역시 대제사장들에게 이단 소리를 들었다면 종말에도 마찬가지이다. 계시록을 좇는 자는 하나같이 이단소리를 듣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족속이 통곡하는 그 날(7절)에 계시록을 훼방하던 자들은 용서 없는 재앙을 받게 될 것 또한 알아야 된다. 요한계시록은 오메가의 정통임과 동시에 오메가의 심판권세이다.
『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요한이 완전 계시를 심판의 다림줄로 받아 아시아 일곱 교회에 전할 때는 그가 성령 강림의 은사를 받은 지 어언 60년 차에 들어가는 시점이었다. 그는 여러가지 환란과 참음에 동참하며 쓰라린 십자가의 생활을 체험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그 영계가 완전 계시를 받을만한 자리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때의 상황은 모든 사도들이 네로 황제의 박해하에서 다 순교를 당하고 오직 요한만 남아 '사랑'을 전파하고 있던 때였다. 원수들은 기독교 복음전파를 저지하기 위해서 사랑의 사도 요한마저도 지중해 밧모 섬으로 귀향을 보냈던 것이다.
9절 계시에는 교훈이 담겨 있다. 은사를 받는 역사는 회개하면 되는 일이나, 계시록을 받는 역사는 참음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받은 영감은 '우뢰의 아들'(막 3:17) 곧 '뢰자'(雷子)의 영감인데, 전설에 의하면 네로 황제 박해 때에 모든 사도 및 전도자를 다 죽였어도 요한 사도만은 죽이질 못했다 한다. 아무리 죽이려 해도 죽지 않기에 기름 가마에 넣어 끓였는데도 죽지 않더라는 것이다. 종말의 144,000 명도 바로 이와 같은 권세로 말세 추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아무리 원수가 죽이려 해도 죽지 않는 인격은 은혜시대 영감으로는 아니 되고 말세의 뢰자(막 3:17) 영감으로 되는 것이다. 기름 가마에 넣고 끓여도 죽지 않는 사람이 바로 사 43:2절의 신창조를 받은 인격이다. 이 같은 변화성도의 인격은 계시록을 통한 새 일 역사로만 가능하다.
『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요한 당시의 아시아 일곱 교회는 - 종말의 '피로 산 세계 교회'를 보이심이다 |
"주의 날"이란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을 말한다. 이 날 성령의 큰 감동이 요한에게 임하는 동시에 그의 뒤에서 신의 음성이 나팔 소리같이 크게 들려왔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계시를 보여주실 때 안식일(토요일)날 보여주시지 않고 예수가 부활한 날 보여주셨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계시록은 부활절로 말미암아 성령 받고 거듭난 영적 이스라엘에게만 해당하는 양식이라는 뜻이다. 율법에 속한 이스라엘은 계시록을 읽을 자격조차 없다는 것이다.
안식일은 첫째 아담이 축복 받은 날인 반면, 부활의 날(주의 날)은 마지막 아담 예수께서 축복 받은 날이다. 이렇게 예수가 부활한 날에 계시가 보여진 것은 육적 안식(첫째 아담)에 속한 이스라엘이 전할 복음이 아니고 마지막 아담 예수께 속한 이스라엘이 전할 복음이라는 뜻이다. 육적 이스라엘이 묵시를 받을 때는 그것을 전하라고 받은 것이 아니고 그저 묵시를 본 것 뿐이다. 그러나 계시록은 선지자들이 보았던 묵시를 온 세계 만방에 전할 수 있는 복음으로 다시 압축하여 보여준 것인데, 그것을 부활의 날인 "주의 날"에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계시록을 기독교가 읽고, 듣고, 전할 복음이 아닌, 육적 이스라엘의 양식이라고 우겨대는 자들(세대주의)이 있으니, 성경을 한참 오해한 것이다.
『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
요한에게 완전계시를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이 들려 왔는데, "일곱 교회"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말의 촛대교회 형편을 축약한 것으로, 재림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합당한 신앙의 표준을 제시하고 책망 받을 일과 칭찬 받을 일을 갈라서 보여준 것이다. 구체적 이름들을 언급하며 '일곱 개의 교회'로 보여주신 것은 주 재림기에 존재하는 세계 교회의 모든 영계적 상황을 이 계시 안에 완전히 담아 두었다는 뜻이다. 계시록의 말씀은 상징이나 비유에 붙여 은근 슬쩍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적'이니 '뭐니'를 운운하며 그 속에서 어떤 교훈정도나 찾아내려고 해서도 안 된다. "장차 될 일"(계 1:19)이며, "이후에 마땅히 될 일"(계 4:1)이라 하셨으므로 계시록은 주님의 피로 산 거듭난 성도들이 주 재림기를 맞이하여 영과 혼과 육으로 부딪혀야 하는 매우 실제적이고도 살아 있는 말씀이다.
사도 요한 당시의 일곱 교회에서 진행되던 일들이 복선 구실을 하여 주님이 재림할 당시의 세계 교회의 형편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이니, 우리는 계 2~3장을 통하여 어떤 교회가 책망을 받고 어떤 교회가 칭찬을 받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사야서나 다른 모든 예언서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예언 장은 이러한 야곱은 진노의 날에 망하고 저러한 야곱은 진노의 날에 복 받는다는 계시의 연속인 것이다. 여기의 일곱 교회도 그것을 표준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일곱 교회 모두 한결같이 피로 산 교회요, 그 사자들 역시 같은 교역자요, 같은 하나님의 종이지만 저러한 종은 망하고 이러한 종이 돼야 새 시대(천년왕국)에 들어 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3. 심판의 주님을 영접하는 교회 : 12∼20
『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
촛대교회 사이를 왕래하시는 재림주는 초림주의 모습과는 매우 상반된다. 영광스럽고도 두려운 만왕의 왕, 심판주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고로 계시록 시대를 사는 우리는 초림주를 영접함으로 거듭난 신앙 위에 심판의 주님을 영접할 준비까지 더해야 하는 것이다. 초림의 주님은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러 오셨지만(마 9:13) 재림의 주님은 마귀와 싸워 이길 의인들을 공중에 불러 올리시기 위하여 오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죄악의 도성 바벨론에 파묻혀 사는 성도는 공중 재림에 참여 할 수 없다.
계시록이 복음서와 다른 것은 1장에서부터 영광과 위엄에 찬 만왕의 왕을 계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계시록이 예수님께서 악을 무찌르고(사 7:15) 지상세계를 통치하러 오실 때에 되어질 말씀이라는 뜻이다. 고로 원수의 미혹과 권세를 이기라고 주신 계시록 말씀을 예배 시간에 은혜 줄 재료 정도로나 이용하는 종이 있다면 절대로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수 없는 것이다.
이사야 59:20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 히브리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 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이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새일성가 39장 4절)
『 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
『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종류는 3 가지이다 』
① 광야 교회: 모세 율법으로 세운 교회인데 이스라엘의 죄악을 자세히 가르쳐 주시는 교회이다(행7:38). 민족적 교회. |
② 피로 산 교회: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세운 교회인데 모든 죄를 단 번에 용서해 주시는 교회이다(행20:28). 세계적인 교회. |
③ 촛대 교회: 주 재림 때에 세계적인 미혹을 물리쳐 주시는 교회이다. 어두움을 밝히는 교회이다(계1:13∼20, 슥4:1∼14). 모든 선지서를 증거하므로 종말에 사단의 미혹을 이기는 교회. |
3년간 주와 같이 동거하며 주님의 품을 의지하던 요한이 재림주 앞에서는 죽은 자 같이 되어버렸고, 주님은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고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사도의 신앙으로는 재림주 앞에 쓰러져버리고 만다는 진리를 보여줌과 동시에 재림의 주님은 죽음을 이긴 완전승리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잡으시고 모든 것을 심판할 권리를 가지고 나타난다는 뜻한 것이다. 피로 산 교회에서 아무리 중생과 은혜를 체험했다 하여도 종말에 허락 받고 나오는 사단에게 미혹을 받으면 다시 아담같이 죽게 되니 에덴동산(천년왕국)에서 축출된다는 것이 계시록의 핵심이다. 요한은 은혜를 많이 받은 대표적인 사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종말에 되어질 순금등대 촛대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 앞에 쓰러지고 만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은혜 때에 영적 구속을 받았지만(벧전 1:9), 기독교의 존재 목적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란 뜻이다. 종말에 되어지는 계시록 역사(초막절, 새 일, 영원한 복음)에 교회가 순종하여야 재림 주 앞에서도 쓰러지지 않을 완전한 영육구원을 받게 된다는 교훈이다.
영계가 깊은 바울 사도도 주 재림 시에는 몸의 구속이 문제가 될 것을 내다 보았다(롬 8:23). 우리의 몸에는 선악과의 원죄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육체의 죽음이 따라오는 것이다(롬 6:23, 5:12~14. 창 3:19). 요한이 재림 주 앞에 쓰러진 것은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가 아직 육체사망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4복음과 서신서로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인간 종말에 촛대교회에서 외치는 영원한 복음(예언서+계시록)를 모르면 영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요한같이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은혜교회의 영계가 촛대교회의 영계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야 할 때가 지금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 되어질 종말의 계시를 알 수 없고 마지막 마귀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원죄 때문에 모든 육체가 죽게 되었으나(히 9:27. 벧전 1:24) 지금껏 기독교가 가져 온 소망은 몸이 죽어 썩은 후에(☞ 이것을 당연시했음) 부활을 통하여 영생을 얻는다는 소망뿐이었다(2천년간의 은혜시대). 그러나 지금은 성도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갈 축복이 열린 시대의 전환기이다. 따라서 교회의 소망도 추가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죽지 않고도 천년을 채울 수 있는 지상안식의 축복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이를 도외시하고 "죽어 천국"만 외쳐서야 되겠는가?
현 시대에서 화를 피하여 천년왕국에만 들어가면 천년의 수한을 채우고 영원한 무궁안식(천국)으로 이전되기 대문에, 이 <아름다운 소식>이 영혼구원의 소식 위에 반드시 함께 전파돼야 하는 것이다. 그 사명이 바로 촛대교회의 귀 있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이 계 1~3장의 중심 내용이 된다.
재림 주 앞에서 쓰러져야 하는 것은 "원죄" 때문!
바울 사도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딤저 1:15),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했다. 중생받고도 해결치 못한 마음 속의 원죄와의 싸움이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는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중생받은 대표 사도에게 싸워 이겨야 할 패역이 남아 있다는 것은 원죄의 힘을 보여준다. 요한이 재림주 앞에서 왜 쓰러졌는가의 답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새 언약으로써 거듭나는 것과 새 일로써의 성결(개조)함을 받는 덧은 시대적으로 구분되는 별개의 역사라는 증거이다.
“너희가 육신으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 8:13). 우리는 중생을 받고도 장성하여 성결되게 역사해야만 백마의 완전한 승리를 이루는 것이다(계 6:2). 사 25:6∼8절에 오래 묵은 포도주(말씀)로 연회를 베풀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신 말씀이나, 슥 3:9절에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하신 말씀은 주 재림 직전에 거듭난 성도에게서 그 원죄까지 뽑아주는 포도주 잔치(예언서 잔치)가 있을 것을 예언한 내용이다. 중생받은 성도의 마음판에 계시록과 예언서를 새겨 넣는 역사(새 일)가 있고서야 주님의 나라(천년왕국)이 온다는 것이다. '새 일'이란 척량하는 역사며(계 11:1) 새길 것을 새기는 역사다. 새긴다는 것은 계시록과 예언서를 100% 읽고 듣는 일을 말한다.
요한은 피로 산 교회의 대표자며 기독교의 종들 중에서도 높은 영계의 속하는 자다. 그러한 그가 쓰러짐은 무얼 뜻하는가? 예언의 등불 없이는 피로 산 교회가 몽땅 그와 같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의 교회에는 요한 같이 귀한 영계를 가진 종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감히 누구기에 주님이 읽고, 듣고, 지키라 하신 계시록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계시록의 발신자는 예수요, 그 수신자는 교회라는 것을 분명히 알자! (계 1:1,4,11. 22:16).
그러나 오늘날, 지상의 많은 교회가 계시록 청종하기를 꺼리며 도리어 이 계시록은 육적 이스라엘에게 주신 책이라는 엉뚱한 주장까지 한다(세대주의 신학). 지상의 교회는 7년 대환란이 오기 전에 하늘로 몽땅 올라가고, 이 땅에는 육적 이스라엘과 불신자들만 남아 계시록 4장 이후의 묵시가 진행된다고 한다. 6장의 흰말은 적그리스도요, 7장의 인 맞은 자는 육적 이스라엘의 남은 종들이요, 20장의 첫째 부활은 신약시대 이후 거듭난 모든 성도의 부활이며, 백보좌 심판 때 일어나는 마지막 부활(둘째 부활)은 불신자들의 부활이라고 가르친다. 교회들의 계시록 해석이 이러하니 교회가 회개치 못하면 '5개월 환란'과 '후 3년 반'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계시록은 교회와 종들에게 주신 책임을 명심하라! (계 22:6,16). 요한이 받은 예수님의 계시와 그 종 선지자들이 받은(계 10:7) 모든 예언서를 청종하느냐 마느냐로 재림주를 영접치 못하는 미련한 다섯 처녀와 영접하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심(18절)은 성부께로부터 '심판권'을 받으셨다는 의미이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세상을 심판키 위함이 아니요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초림 주님이(요 3:17, 12;47), 이제는 세상을 심판키 위하여 오시려고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신다. 요한에게 보여주신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는 인간 종말에 나타날 일곱 교회의 사자와 그 교회의 영계를 계시한 것이니, 이것은 은혜 시대 종들 중에서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종은 촛대교회의 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보이신 것이다. 고로 지금은 예언서를 모르고서는 재림 주님을 알 수도 그분을 신랑으로 영접할 수도 없는 때이다.
주님은 예언서를 손에 들고도 깨닫지 못하는 종들을 소경, 귀머거리라 하셨다(사 42:18~20). 이러한 이들이 교권을 잡으면 그것이 바로 바벨 교회며, 음녀교회다.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첫사랑을 사수하지 못하면 재림의 주님 앞에 쫓겨나므로 음녀교회는 심판의 대상이다. 촛대교회가 물리쳐야 할 것은 계 9장의 "떨어진 별"이요, 11장의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요, 12장의 "붉은 용과 그 사자들"이요, 13장의 "바다와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들"이다. 짐승의 세력 666은 마지막 성도들의 싸움의 대상인 것이다.
피로 산 교회에 사단의 미혹이 들어올 때 그 미혹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것이 계시록이니 누구든지 계시록을 모르면 적기독 무신론 공산당의 종교 궤휼정책에 말려들게 된다. 무신론의 본부인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가 이미 1958년 3월 18일부터 다음과 같은 거짓을 외쳤다. 『평화 공존, 핵무기 제한, 핵실험 금지』 저 궤휼이 확장되어 자본주의 세계가 공산권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게 되었고, 순진한 기독교회에 W.C.C.라는 괴물이 자라나 공산당의 거짓 목사들이 양의 탈을 쓰고 드글거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공산권의 교회침투를 분별케 해 주신 것은 이제 이 거짓된 평화공존과 에큐메니칼 운동(종교통합운동)을
힘입고 등장할 마지막 짐승 "작은 뿔" 곧 "일곱에 속한 여덟째
왕"의 미혹을 이기고 승리케 하기 위함이다. 영적으로 캄캄하고 어두워진 세계!
우리는 밤중에 외치는 파수꾼의 소리(마 25:6)가 되어 많은 이들을 일깨워 혼인잔치에
참석시키는 귀한 종들이 되어야 한다.
1장의 핵심은 가장 복 있는 교회는 촛대 교회요, 가장 복 있는 종은 촛대 교회의 종이라는 것이다. 스가랴 4장의 순금등대는 계시록 1장의 일곱 촛대교회의 역사를 보이되 감람나무 같은 두 증인(계 11:3) 곧 144,000 명의 활동을 계시한 것이다. 2장부터 전개되는 종말의 계시를 확실하게 읽고 듣고 지키고자 할 때 주님은 우리 편에서 싸워 주실 것이다.
스룹바벨의 손이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 큰 산(적기독)이 평지가 된다는 예언이 있으니 촛대교회의 승리를 확실하다(슥 4:7~10). 우리의 승리는 예언의 말씀! 곧 어둠을 밝히는 기드온의 봉화불 권세에 있다. 전 세계가 새 시대로 들어가는 데에 있어서는 공산당의 무신론 짐승정책과 거짓 선지자의 종교 궤휼정책과 붉은 용의 공중권세 압박을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것이 계시록 전체의 줄거리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4복음을 힘입어 내 마음에서부터 마귀를 몰아내고, 계시록을 청종함으로서 이 땅에서 마귀 떼를 없이 하는 주 재림 시(時) 심판 역사의 역군이 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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